“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며칠 전 어떤 분과 영적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즘 당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것도 같고 안 계신 것도 같고.
영적인 진보를 하는 것도 같고 그대로인 것도 같고.
그래서 답답하다고 하셨고,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에 부족함이 많다.”는 말로 하소연을 끝내셨습니다.
이에 저는 조금 과장되다싶을 정도로 큰 소리로 강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뭐가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하느님이 부족하시다는 말입니까?
자매님이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하느님이 부족하지 않으신데
뭐가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부족함이 없으신 하느님을 보지 않고 왜 나의 부족을 봅니까?
내가 하늘 높이 올라가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려오시는 하느님,
오시어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왜 올라가 만나려 합니까?
대략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그러하고
옛날 많은 성당들이 뾰족탑을 높이높이 세웠습니다.
좋게 이해하면 하느님께 오르고픈 열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이해하면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하늘을 뚫고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은 하느님께서 여시고
하느님께서 땅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가까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하늘이 열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과 소통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머리위에서 하늘을 오르내리는 천사가
우리와 하느님 사이도 오르내리며 하늘과 우리를 이어줍니다.
그러나 천사가 왜 굳이 필요하겠습니까?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도에 가면 힌두신이 있는데
그 신들을 보면서 인상이 깊었던 것은
그 신들의 손이 천 개나 되고 눈도 천 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천수관음도 같은 뜻입니다.
천개의 눈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살피고
천개의 손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다독이는 관세음보살이시지요.
천사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 개의 손들,
우리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 개의 손들.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천사들,
천사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이 되는 우리들.
교만으로 단절이 되었던 하느님과 우리 사이,
무관심과 미움으로 단절이 되었던 우리사이를,
하늘을 열고 겸손으로 내려오시고
피곤을 잊으시고 사랑으로 다가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겸손과 사랑으로 소통케 하겠나이다.
인성(즉 인간의 모든고통들) 을 통과하지않는 신성(영원한 생명)
없다는 생각 동시에 예수님의 땅에 오심 묵상하며
어찌 그리 감사하고 행복한지요 ,잘못된 생각들 고쳐주시고
모두들 아름다운 추석이되기를 맛있는 음식 할수있음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