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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1500)

   가 : 후안 데 플란데스 (Juan de Flandes, 1465-1519)

   기 : 목판 유채 (21x16cm)

소재지 :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Washington)


현대 세계에서 악의 문제는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악마의 작동이라는 생각은 종교인들 사이에서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악마나 마귀의 작용에 대한 일화가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현대처럼 과학이나 심리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구시대 사람들의 무지에 바탕을 둔 착각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악마는 존재한다”라는 책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악마의 존재성에 대해 알아야 함을 전하셨다. 


지금 교황님은 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과감히 행동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이 말씀하신 악마의 존재성에 대한 견해 표현이 시대 착오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균형있는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세상의 어둠인 악마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기본이 되어야 하기에 이 책을 쓰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황님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1세기에도 악마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악마와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올가미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악마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너무 순진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작품은 마태오 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유혹 사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작가는 오늘날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속하는 프랑드르 출신으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 가서 대단한 화풍을 일으킨 작가이다.


15세기부터 북 유럽국가에서는 이탈리아와 전혀 다른 독창적인 화풍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을 프랑드르 화풍이라고 한다. 이들은 실재적인 세부 묘사를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인 화풍을 창출했고, 원근법과 명암법을 활용해 작품의 생기를 더 했으며 무엇보다도 성화에 자연 풍경을 도입함으로써 성과 속의 경계성을 허물고, 신앙의 내용을 세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경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마태4,1-11)


이 작품의 내용은 위에 인용한 복음 말씀을 시각화한 것으로, 바로 성경의 내용을 상기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예수님은 악마에 대한 강하면서도 확실한 거부의 몸짓을 손으로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악마와는 협상이 필요 없는 원천 봉쇄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악마의 유혹을 받는 순간에 여러가지 핑계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이 정도는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이고 교회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나라고 무슨 독야청청의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라는 것과 같은 유혹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더라도 나만은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의 몸짓을 하고 계신다. 우리를 악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악마에 대해선 무조건적 완강한 거부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명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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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곁에 프란치스코회 수사 하나가 서 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프란치스칸 수사답게 오른손에 묵주를 쥐고 있다. 그러나 왼손에는 돌을 들고 있다. 그리고 발밑에는 빵이 한 덩이 놓여 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 허기진 예수님께 이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마의 모습이 성스러운 프란치스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칸은 사람들 곁에 살면서 예수님의 존재성을 증거하는 수도자들인데 불구하고 악마의 상징이 된 것은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악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악마라고 할 때 불교의 지옥도나 미켈란젤로의 최후심판에 나오는 구원받지 못한 지옥 영혼들을 끌고가는 흉물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악마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너무 매력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가 흉물스런 존재라면 피하기 너무 쉬울테지만, 악마는 우리에게 끈적한 유혹의 손길을 뻗칠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이기에 대단한 경계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함을 알리고 있다. 어떤 신학자는 마귀는 “하느님의 원숭이”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악마는 교묘히 자신의 존재가 하느님인 것처럼 감쪽같이 인간을 속일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프란치스칸 수도자처럼 보이는 악마를 자세히 보면 두 개의 뿔이 있으며 아래를 보면 물갈퀴 모양의 흉측한 발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 자주 당하기에 무심하게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종교 지도자 중에 거짓 정보를 흘려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인데, 그들의 생각이 거짓으로 드러난 처지에서도 여기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하나의 세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 된다면 양심도 없는 사람처럼 거짓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바로 겉으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떠들며 양의 탈을 쓴 악마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종교 지도자들이 만들고 있는 악의 유혹도 심각한데 이것을 작가는 프란치스칸 수도자의 모습을 통해 종교도 악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를 되뇌는 습관을 키워야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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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성전 위에 두 사람의 형체가 보이는데, 이는 바로 예수님과 악마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이다. 예수님과 프란치스칸 수사로 변신한 악마 사이에 나무가 있는 것은 우리가 상기해야 할 가치를 알리고 있다. 즉 악마의 활동 무대는 지하실이나 음험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삶 속의 너무나도 평범한 공간이기에 우리의 삶 자체가 악마의 유혹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악마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하고 치켜세우면서 무모한 충동을 부추기고 있다. 살아가는 환경이 나아지면서 우리 주위엔 과거에 상상도 못했던 여러 유혹이 대단한 매력을 과시하며 달려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삶의 성공 기준인 양 쉼 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주식투자로 돈방석에 앉은 성공기, 세월이 비껴간 것 같은 미모를 과시하는 연예인 등 너무도 눈부시게 보이는 것들이 신앙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한다.


여러 화려한 외관들들로부터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답답한 것은 아닌지, 시대착오의 삶이 아닌지 유혹받을 때가 많다. 양념이 많이 든 음식은 한 번은 맛있으나 곧 실증이 날 수 있지만 담백한 음식은 계속해서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이 가르치는 삶은 이 세상 어떤 형태의 부유와 편리와 명성이 함께 하는 삶보다 더 삶을 생기 있게 만드는 것이기에 이 세상이 주는 잘못된 유혹을 혼쾌이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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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며 악마가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물리치셨다.


여기에서 크리스천 신앙은 적극적인 선행의 삶을 목표로 노력하는 삶만이 아니라, 우리를 파멸시키는 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신앙이 삶의 균형을 찾게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악마의 존재는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만 아니라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스캇 펙 은 심리학 연구를 통해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많은 사람을 심리적 갈등에서 해방시킨 학자인데 그는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발견되는 악마성 문제를 “거짓의 사람들”이란 저서에서 해설하고 있다.


가장 악과 거리가 먼 선의 상징과 같은 종교의 지도자라는 사람들 중에 일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마적 마성이 있다는 것을 통해 악의 문제는 치외법권 지역이 없는 모든 인간의 문제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악을 견재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 하십시오.”(1 베드 5:8-9)


뭣보다 성경은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유혹의 삶을 사신 것을 상기시키며 유혹을 당하는 순간에 유혹 당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유혹에 약한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용기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히브 4:15)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히브 2:18)


과학의 영역이 훨씬 더 힘찬 영역이 된 현대에서 악마의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오늘날 악마는 이 작품의 현실처럼 훨씬 더 우리 일상 삶에 침투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현대를 바로 살기 위해선 악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뭣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알리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악마의 작동이 어느 시대 보다 더 삶을 혼란에 빠트리는 현대에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예언적 작품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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