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변화의 길 (1)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마태12,48)
“믿는 영혼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정배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의 형제들입니다. (마태12,50)
우리가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지니고
우리의 마음과 몸에 그분을 모시고 다닐 때(1코린6,20)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입니다.
거룩한 모범과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마태5,16)
(성프란치스코가 모든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Ⅱ51-53)
가난과 겸손은 프란치스칸 삶의 열쇠다.
아버지의 자비와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선은
정배가 되고, 형제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 위한 내적 가난과 겸손이
하느님과 관계성 안에서 너와 나의 관계성을 통해 모든 창조물과 공유하는
선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다.”고 말하면서
하느님을 받아들인 자신의 변화가 역겨워했던 나환자를 받아들이는
관계적 변화로 이끌어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피조물의 찬가인 태양의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 가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다.
하느님과 나, 너와 나, 그리고 창조물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 된다.
관계적 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통제와 지배를 위한 힘, 즉 자기중심적 힘을 포기하는 구체적 삶으로 표현된다.
가난과 겸손은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일이며
힘을 포기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십자가의 역설을
삶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믿음만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공유하는 선이 행동하는 자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너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일이 먼저 할 일이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라고만 배웠지,
타인이 나를 사랑하기 쉽게 만드는 데는 노력하지 않았다.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건 나의 변화다.
내가 변하면 관계가 변하고 관계가 변하면 복음이 발생한다.
복음적 자유,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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