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시몬과 유다 사도 축일이었기에 다른 독서를 하였지만
원럐 연중 30주 목요일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갈라놓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 동족 이스라엘이 너무도 안타까워 오늘은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심정은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된 아들을 대신하여
자신이 감옥에 가겠다는 어머니의 심정과 같거나 그보다 더 합니다.
대신 벌을 받아 아들이 정신차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는데
정신차리지 않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너무도 안타까운 것처럼
바오로 사도도 동족인 유대인들이 회개하기 전의 자신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고 떨어져 나감이 너무도 안타까운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도 잘 알다시피 바오로 사도는 죽여서라도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던 존재였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자신이 오히려 주님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와 떼어서는 도무지
자기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정체성을 가지셨던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모든 서간의 시작 부분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인 나 바오로"라고 소개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오로"라고 늘 소개하지요.
그런 그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동족이 돌아서기만 한다면 그렇게 되겠다니
그 사랑이 참으로 대단하고, 그 심정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무것도 갈라놓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이런 바오로 사도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쉽게 포기해버리는 우리의 사랑 말입니다.
우리는 몇 번 우리의 사랑이 거절당하거나 충고가 무시당하면
그 사람을 포기하고 내 사랑에서 그를 제외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자주 말씀드리듯이 우리의 사랑이 실패한다면
내 사랑이 거절당하는 실패보다 내 사랑을 내가 포기하는 실패가 더 큽니다.
누가 나의 사랑을 거절한다고 해서
나의 사랑을 포기하면 누구 손해입니까? 나의 손해지요.
그런데 누가 나의 사랑을 거절하면 그의 손해이고 그가 손해를 봐야지
그것 때문에 내가 사랑을 포기하는 손해를 봐서는 안 되겠지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랑의 실패는 포기이지 거절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를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에게 간 것은 동족을 포기하고 간 것이 아니지요.
오늘 봤듯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회당에 찾아 갔음을 우리는 간과치 말아야 하지요.
아무튼, 포기하지 않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에 우리를 비춰보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식별의 기준)
http://www.ofmkorea.org/386064
15년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대신 죽어줄 수는 있어도 대신 받게해줄 수는 없는 구원)
http://www.ofmkorea.org/83833
14년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사랑만큼 자유롭다.)
http://www.ofmkorea.org/71619
10년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http://www.ofmkorea.org/4522
09년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단순 무식하고 도발적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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