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전의 정화라는 면에서 겹칩니다.
마카베오와 아들들은 이민족에게 뺐겨 더렵혀졌던 성전을 되찾아 정화하고,
복음의 주님께서도 장사꾼들이 더럽힌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그런데 앞뒤를 연결시켜 생각해보니
이스라엘 족속은 그렇게 애써 되찾아 정화한 성전을 자신이 더럽힌 겁니다.
이에 어제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을 흘리신 주님께서
오늘은 격하게 진노하시고 과격하게 정화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와 백성들은 자기들에 의해 성전이 더럽혀졌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고 이민족에 의해서만 더럽혀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럴 것 같습니다.
설마 내가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이겠냐고 생각했는데
잘 성찰해 보니 실은 내가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이지요.
물론 모독의 의도로 우리가 성전을 더럽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의도 없이 또는 의식 없이 그러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까 성전 의식과 기도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성전에 들어와 밖에서 해도 될 담소를 성전에서
나누는 사람이 많고 차를 가지고 들어와 마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와 '하느님, 저 왔습니다.' 하는 인사도 없이 말입니다.
이는 마치 앞에 어른이 계신데 인사도 하지 않고
투명 인간 취급하며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거지요.
하느님과의 대화가 기도인데 성전에서 하느님과 대화하지 않고
인간끼리 대화하고 있으니 이것이
의도하지 않은 성전 모독이요 하느님 무시지요.
우리 일상적인 의식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시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 아니 내 의식과 무의식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시면
내가 아무리 성전에 들어가도 그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시는 거지요.
나라는 성전과 내 밖의 성전 모두에 하느님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이 경우 성전 정화는 어떤 것입니까?
거창한 욕심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하찮은 것이라도 몰아내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때 악감정이나 큰 욕심을 몰아내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유리창에 흙탕물이 묻어 있으면 잘 보이니 닦아내지만
작은 먼지들은 보이지 않으니 닦아야겠다는 생각조차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소소한 성전 정화에 대해서 나눠보았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빈집이 깨끗한 집이 아니듯)
http://www.ofmkorea.org/388786
19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내가 성전을 찾는 이유)
http://www.ofmkorea.org/290333
18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주님께서 나를 쫓아내시기 전에)
http://www.ofmkorea.org/167107
17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기도할 수 있는데 걱정하면 그것이)
http://www.ofmkorea.org/114433
16년 여중 제33주간 금요일
(이익의 장소인가 유익의 장소인가?)
http://www.ofmkorea.org/95687
13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사랑할 때 정결하다.)
http://www.ofmkorea.org/57867
12년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기도질과 강도질)
http://www.ofmkorea.org/44273
11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사귐은 적고 일이 너무 많다.)
http://www.ofmkorea.org/5382
10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전과 복마전)
http://www.ofmkorea.org/4584
09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몰아내야 할 것들!)
http://www.ofmkorea.org/3323
08년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기도는 곧 성전 정화)
http://www.ofmkorea.org/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