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루카 축일, 오늘의 복음은 일흔 제자를 파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마태오 복음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은 이 구절을 뺍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 주님의 말씀일까요?

같은 내용의 마르코 복음에도 이 구절이 없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주님께서 이방인들을 결코 배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놓고 볼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리 없습니다.

아마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쓴 마태오 복음 사가가
유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이렇게 썼거나,
마태오 복음의 맨 나중을 보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우선은 선택받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런 다음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즉 순서적인 복음 선포의 뜻으로 이렇게 쓴 것일 것입니다.

아무튼 루카복음은 이 구절을 뺍니다.
그것은 루카 복음사가가 바오로와 함께 이방인의 사도였고,
그래서 이방인들을 위해 복음을 썼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바오로와 루카가 새로운 곳으로 가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영토가 확장되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도 확장되었다고 말입니다.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대로인 하느님의 사랑도 사람에 따라 커지고 작아질 수 있지요.
인간은 무엇이든 자기 그릇만큼 담을 수 있는데
하느님 사랑도 자기 그릇만큼 담고서는 그 정도로 크다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사랑이 내 그릇만할 리 없지요.
우리 인간의 모든 그릇을 채우고도 남는 것이 하느님 사랑이고,
한 개의 달이 천 개의 호수에 비치듯
수많은 사람들 안에 있는 사랑도 같은 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수, 민족들의 수만큼 크고
사람들의 수, 민족들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에야
우리는 하느님 사랑에 가까이 간 것입니다.
반대로 하느님 사랑에 가까이 간 사람은
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가 가고
모든 다름을 껴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름이 틀림이 되고,
그래서 사랑에서 배제되기도 하는데
다름은 틀림도 아니고
다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달라도 사랑하고
달라도 不二(둘이 아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마니또 2010.10.19 22:19:09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늘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저의 문제가 되어 제 앞에 부딪힐 때면
    다름을 수용하기가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인간사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한 해 두 해 세월이 갈수록
    왜 이렇게 마음이 점점 굳어져 가는걸까요..

    강론을 묵상하며
    주님의 마음, 주님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신부님! 강론과 강론 제목이 너무 아름다워요..^^
  • ?
    홈페이지 뭉게구름 2010.10.19 22:19:09
    하느님의 사랑은
    No , 가 없고
    오직 Yes , 만이 있습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5Nov

    연중 33주 월요일- 지나가다와 지나치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지나가다와 지나치다는 같은 말 같...
    Date2010.11.15 By당쇠 Reply1 Views962
    Read More
  2. No Image 14Nov

    연중 제 33주일- 파멸과 아름다운 소멸

    우리는 지금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고 오늘 주일 독서와 복음은 마지막 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죽음의 의미가 다르고 마지막 날의 의미가 다릅니다. 죽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파멸이고 이 세상의 끝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Date2010.11.14 By당쇠 Reply1 Views881
    Read More
  3. No Image 13Nov

    연중 32주 토요일- 낙심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복음을 보면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예수님께서 드신 비유가 적절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과 끈질기게 청하...
    Date2010.11.13 By당쇠 Reply0 Views946
    Read More
  4. No Image 12Nov

    연중 32주 금요일- 그날이 오면

    “사람의 아들의 날” 오늘 복음은 사람의 아들의 날이 오면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은 우리들의 날이 아닙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은 사람의 아들이 주인공이지 우리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날, 사람의 아들의...
    Date2010.11.12 By당쇠 Reply1 Views866
    Read More
  5. No Image 11Nov

    연중 32주 목요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 이 말씀은 지금도 그 감동이 생생합니다. 제가 처음 부산의 본당에 있을 때 매...
    Date2010.11.11 By당쇠 Reply1 Views979
    Read More
  6. No Image 10Nov

    연중 32주 수요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도록

    “나병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
    Date2010.11.10 By당쇠 Reply0 Views908
    Read More
  7. No Image 09Nov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살아있고 찾아가는 성전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로부터 “가서,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분의 집이 성당 건물로 알고 폐허가 된 성당들을 다미아노 성당서부터 시작해 셋이나 고쳤습니다. 그 후 하느님의 집이 건물로서의 ...
    Date2010.11.09 By당쇠 Reply0 Views88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135 1136 1137 1138 1139 1140 1141 1142 1143 1144 ... 1350 Next ›
/ 135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