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회서는 엘리야가 불처럼 일어서서 다시 오리라고 하고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다시 오기로 된 엘리야라고 하시며
세례자 요한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것은 엘리야가 거짓 예언자들과 싸워 이김으로써 거짓을
바로잡은 것같이 세례자 요한도 그러할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엘리야는 싸워 이겼지만
세례자 요한이 싸워 이겼나요?
살해당했으니 싸움에 진 것이고
그러니 바로잡지도 못한 것이 아닌가요?
다시 돌아온 엘리야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뤘다고 하시며 당신도 같은 운명이 될 거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잘못이나 거짓을 바로잡는 사람은 죽음을 당하든
수난을 당하든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도 죽지는 않았지만, 이제벨에게 쫓기지 않았습니까?
도망가지 않았으면 그도 틀림없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알아보지 못하여 제멋대로 다루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설사 알아봤더라도 사람들이 바로잡는 사람을 내버려둘까 생각합니다.
한번 나에게 적용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누가 나를 바로잡아주면 '아이구 고맙습니다.' 하겠습니까?
바로잡아주는 사람을 고맙다고 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여기서 성인은 두 가지 뜻이 다 있습니다.
성숙한 어른이라는 뜻의 成人과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의 聖人입니다.
인격적으로 정말 성숙한 사람은 겸손할 뿐 아니라 지혜롭기에
당장은 비록 입에 써도 바로잡아주는 사람을 고마워할 터인데
그건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싫어하는 것을 욕먹어 가며
바로잡아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해코지까지
당할 것 같으면 더더욱 바로잡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아예 나를 바로잡아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있던 사람도 웬만한 사람은 한두 번 바로잡아주다 통하지
않으면 나를 포기하고 떠나는데 계속 옆에 있으면서 잡아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지만
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지금 내 옆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바로잡아주는 사람을 진정 사랑하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진정 지혜로고 성숙한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제2의 엘리야로서)
http://www.ofmkorea.org/391742
19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나를 바로잡아줄 사람은 누구?)
http://www.ofmkorea.org/298489
18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바로 잡는 사람)
http://www.ofmkorea.org/175783
17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이미 와 있지만)
http://www.ofmkorea.org/115524
16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상처주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잡아주는 사람)
http://www.ofmkorea.org/96519
15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나의 예언자는 누구?)
http://www.ofmkorea.org/85069
14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우리도 예언자!)
http://www.ofmkorea.org/72827
13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미행을 오신 주님의 뜻?)
http://www.ofmkorea.org/58483
12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나의 엘리야와 나의 요한은 누구?)
http://www.ofmkorea.org/45867
11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막 가는 자들)
http://www.ofmkorea.org/5422
09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화가 빛이 되도록)
http://www.ofmkorea.org/3392
08년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신들린 사람)
http://www.ofmkorea.org/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