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요한은 대답합니다.
군중에게 한 대답은
일반적인 나눔 실천으로 볼 수 있지만,
세리들과 군사들에게 한 대답은
조언이라기 보다는 지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요한은
세리들이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한다는 것,
군사들이 강탈하거나 갈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쁠 수 있는데,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사람들은 그것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 청년을 기억합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었지만,
나눔을 할 수 없어서 결국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나타난 세리들과 군사들은
조언이 아닌 지적을 들으면서도 기뻐합니다.
이들이 기뻐한 이유를
복음은 그들의 기대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요한이 메시아일 것 같은 기대,
메시아 왕국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기대로
그들은 한창 부풀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 청년은 실망하고 떠나갑니다.
그러나 비록 요한을 메시아로 잘못 알아보았어도
세리들과 군사들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구원을 위한 초점을 잘 맞추었어도
그것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세리들과 군사들은 그 초점이 좀 빗나갔어도
좋은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약점이 드러나도 괜찮을 정도로
나에게 기쁨을 줍니다.
이것을 볼 때
내가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도,
나의 자존심마져도 내려 놓을 정도로 그 기대가 있을 때,
오히려 우리는 더 큰 기쁨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