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
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마태 1,18)
예수님의 불멸성은 인간으로 태어나신 뒤에도 번함없다
왜 마태오 복음사가는 복음서 처음에는 ‘나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여기서는 ‘탄생’을 이야기할까요? 첫머리에서는 ‘나심의 책’I (마태 1,1)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마태 1,18)고 하니 말입니다.
.. 그러면 ‘탄생’과 ‘나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 두 단어를 그리스도와 관련해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잘 들으십시오. 지금 제가 하는 것과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고유의 본성상 만져지
지 않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유컨대, 이 말을 종이에 쓰면, 말이 육신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고 만질 수도 있습니다. 육체가없고 몸이 없는 하느님의 말씀도 이와 같습니.
말씀은 신성을 지닌 존재시기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리가 묘사할 수도 없지만, 육화로 말미암아 우리 눈에 보이고 묘사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십니다. 이런 까닭에, 육신이 된 존재로서 ‘나심’의 ‘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고자 히는 것은 마태오가 왜 ‘환시’나 ‘이야기’라는 단어 대신 ‘책’이라는 단어를 썼느냐가 아닙니다.(이 문쩨는 앞에서 이미 다루었으니까요). 마태오가 왜 앞에서는 ‘나심’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탄생’이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탄생’과 ‘남의 차이는무엇입니까?
‘탄생’과 ‘남’은 다룹니다. ‘남’ 또는 ‘생겨남’은 본디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탄생’은 죄를 지어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에게서 사람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남은 불멸성과 죄 없음의 의미를 담고 있는 반면 ‘태어남’은 정념과 죄에 매인 어떤 것을 암시합니다. 영원히 ‘나신’ 분인 주님은 죄를 지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태어나심은 불멸의 존재인 그분의 영원한 ‘나심’을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태어나심으로써, 영속하지 않는 것을 취하셨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죄의 지배 아래 놓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태초의 아담의 모습을 한결같이 지니고 계셨으므로 타락이나 죄의 가능성이 조금도 스며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경우, ‘나심’은 무존재에서 존재가 되는 과정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나심’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계시다가 “종의 모습"(필리 2,6-7)을 취하신 ‘옮아감’(바뀜,길)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태어나심’은 우리의 태어남과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보다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듯이 “여인에게서"(갈라 4,4) 태어나셨지만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셨으므로 우리의 태어남보다 뛰어난 태어남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날 새로운 태어남에 대한 암시, 말하자면 예고가 담겨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 ☨성인 / 영적 글 묵상☨ ✝️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이 책을 먹어라”
거룩한 독서는 아주 정확하게 말해서 바로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먹는다는 말을 할 때 영양 섭취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사실 엄격히 보아 먹는다는 행위는 영양 섭취의 전 과정에서 그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 전 과정에서 보자면. 먹기 단계에 이어서 다른 단계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영양섭취의 자연적인 기능은 이것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일종의 조절. 식이요법. 금욕을 전제한다. 이 모든 요소가 거룩한 독서 안에서도 발견된다. 거룩한 독서는 정확히 말해서 우리 초자연적 유기체의 영양 섭취 기능일 따름이다. 이것이 거록한 독서에 대한 온전한 이해다.(45)
✝️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성령 열매성월 2주간 인내 / 친절 /성실☨ ✝️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1-6장
☨토요일이웃 종교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
아브라함과 모세의 하나님 체험
모세의 유일신 체험은 이스라엘 종교 사상의 뼈대를 형성히게 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족장들의 일반적인 ‘엘 하나님' 신잉에 특유한 색깔과 전통을 부여하는 계기가 된다. 모세가 경험하고 만난 ‘야훼' 하니님의 본질과 속성은 ‘야훼 신명 연구'라는 주제로 따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여기에서는 모세의 유일신 신앙의 총괄적 특성을 고칠하기로 한다.
첫째, 모세가 경험한 유일신은 모세 개인 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심리 상태가 조성해 낸 신관이 아니고, 거의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어진 특유하고도 강렬한 '신적 계시' 체험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많은 종교 심리학자들은 인간성 안에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생래적 종교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싹이 트고 발전해 가면서 저급한 정령 신앙단계에서 고치원적인 유일신괸으로 발전해 간다고 주장한다. 특히 계몽주의와 헤겔 역사 철학의 영향을 받던 시대에 모든 사상이 저급한 상태에서 고급한 상태로,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나아간다는 발전사관 또는 진보사관의 관점이 종교사 연구에도 널리 적용된 시대가 있었다.
물론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일하는 모세가 자신의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멀리 떨어진 이집트 띵에서 노예 신분으로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동족의 고통과 민족의 비애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살았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 비록 목동이라는 신분 상태이지만 잠재 의식이건 무의식이건 간에 모세는 동족의 문제를 늘 생각해 왔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호렙산 가까운 미디안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한복판의 거룩한 광휘에 둘러싸여 자기를 부르는 거룩한 절대자에 대한 신현 체험을 한 것은 그에게 들이닥친 구체적인 사건으로 그를 사로잡았다. 이 사건은 그에게 주어진 사건이지 그가 예견하거나 기대하거나 심리적으로 투영한 사건이 아니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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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성령 열매성월 3주간 기쁨 / 선행☨
https://youtu.be/gSaYKbZ7B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