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음 후를 궁금해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 후가 더 궁금할 것입니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있다면 사후 세계는 어떤지 등.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다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인지 궁금증도 두려움도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죽기 전에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예를 들어 중풍에 걸려 다른 사람에게 신세 많이 지고
폐를 엄청 끼치다 죽지 않을지,
‘나는 행복하다!’고 떠들던 제가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삶을 저주하다 죽지는 않을지 등.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제가 두려움이 별로 없다면 제가 사후 세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일까요?
저도 죽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은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제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지만
부모가 원해도 아이가 없는 가정이 있고
부모가 원하지 않는데도 태어나는 것을 보면
제가 태어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셨으니
하느님께서 계시기만 하면 걱정할 것이 없고 두려울 것 없습니다.
저를 원하신 하느님이 저를 다시 살리실 것이고
저를 원하신 하느님은 좋은 분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아들들의 고백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으니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 희망하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죽는 것이 더 낫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 후가 더 궁금할 것입니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있다면 사후 세계는 어떤지 등.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다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인지 궁금증도 두려움도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죽기 전에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예를 들어 중풍에 걸려 다른 사람에게 신세 많이 지고
폐를 엄청 끼치다 죽지 않을지,
‘나는 행복하다!’고 떠들던 제가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삶을 저주하다 죽지는 않을지 등.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제가 두려움이 별로 없다면 제가 사후 세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일까요?
저도 죽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은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제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지만
부모가 원해도 아이가 없는 가정이 있고
부모가 원하지 않는데도 태어나는 것을 보면
제가 태어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셨으니
하느님께서 계시기만 하면 걱정할 것이 없고 두려울 것 없습니다.
저를 원하신 하느님이 저를 다시 살리실 것이고
저를 원하신 하느님은 좋은 분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아들들의 고백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으니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 희망하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죽는 것이 더 낫소.”
부모님들이 의아했었는데, 어느덧 저도 그 기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생명과 평화를 위해 달리는 신부님과 한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42.195Km 쉽지않은 그 길을 은총 가운데 무사완주 하게하시고
우리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는 복된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힘내요~^^!!
저와 몇몇은 작년에도 뛰었지만 20여 명은 처음 뜁니다.
무탈하게 끝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달리는 저희들의 지향에 동참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