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지나가다와 지나치다는 같은 말 같지만 사실은 다른 말입니다.
지나가다는 어디를 거쳐 가는 것을 일반적으로 서술하는 말이지만
지나치다는 어디를 거쳐 가되
멈추지 않고 건너뛰어 가는 것을 조금 더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서울 역 광장을 지나가면서
노숙자들을 지나쳐서 매표소로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멈추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 것인데
누구를 일부로 피해서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일부로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관심하여 지나치거나
나의 일에 너무 몰두하여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애정,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참 사랑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나쳐왔는지.
과거의 저는 어디에 그리고 누구에게 머물지 않는 것이
수도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떠난 본당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지도 않고
떠난 사람은 전화도 잘 하지 않고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애착하고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러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애착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하여 그렇게 바람처럼 다 지나쳐갔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의 저는 애착하고 싶어도 애착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 에너지인 情이 약화되었습니다.
아기 보기로 치면
보는 것까지는 좋은데 씨름하기에는 힘이 부칩니다.
아 슬픕니다!
이제는 애착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데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잘 해보려 해도 힘이 부족하고
누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려는 마음은 더 커졌는데
그 아픔을 견디는 힘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가 정면으로 떠안고
아픔을 제가 온전히 껴안지 못하고
슬쩍 들려 잠깐 머물다 살짝 떠나는 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님은
자비를 청하는 눈먼 이를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멈추시고
관심을 보이시고
무엇을 당신에게 원하는지 물으십니다.
주님의 이 사랑이 오늘
누가 요구할까봐 피하는 저의 작은 사랑을 추슬러
다시 사랑하도록 일으켜 세웁니다.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지나가다와 지나치다는 같은 말 같지만 사실은 다른 말입니다.
지나가다는 어디를 거쳐 가는 것을 일반적으로 서술하는 말이지만
지나치다는 어디를 거쳐 가되
멈추지 않고 건너뛰어 가는 것을 조금 더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서울 역 광장을 지나가면서
노숙자들을 지나쳐서 매표소로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멈추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 것인데
누구를 일부로 피해서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일부로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관심하여 지나치거나
나의 일에 너무 몰두하여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애정,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참 사랑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나쳐왔는지.
과거의 저는 어디에 그리고 누구에게 머물지 않는 것이
수도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떠난 본당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지도 않고
떠난 사람은 전화도 잘 하지 않고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애착하고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러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애착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하여 그렇게 바람처럼 다 지나쳐갔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의 저는 애착하고 싶어도 애착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 에너지인 情이 약화되었습니다.
아기 보기로 치면
보는 것까지는 좋은데 씨름하기에는 힘이 부칩니다.
아 슬픕니다!
이제는 애착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데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잘 해보려 해도 힘이 부족하고
누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려는 마음은 더 커졌는데
그 아픔을 견디는 힘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가 정면으로 떠안고
아픔을 제가 온전히 껴안지 못하고
슬쩍 들려 잠깐 머물다 살짝 떠나는 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님은
자비를 청하는 눈먼 이를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멈추시고
관심을 보이시고
무엇을 당신에게 원하는지 물으십니다.
주님의 이 사랑이 오늘
누가 요구할까봐 피하는 저의 작은 사랑을 추슬러
다시 사랑하도록 일으켜 세웁니다.
오늘 신부님의 묵상 글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릅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연민의 말씀,
자신을 아는 것과 하느님을 아는 것은 함께 간다고 하지요.
제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아는 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자신의 우월성을 교묘하게 내게우는
치사한 방법보다 차라리 부족한 자신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용기, 지혜가 필요하겠구나!,
라고 신부님의 묵상 글을 읽으면서 다짐하네요.
저도 제가 누구인가?
하는 정직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