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는데
그 결심이 약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적으로 한 번 무엇을 결심하면
그것을 이룰 때까지 자기 결심을 허물지 않는 그런 강인한 성향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성향적으로 분위기, 기분에 좌우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좌우되는 그런 사람이 있지만,
여기서는 영적인 강인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씀과 연결시킬 때 마음이 물러진다는 것은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이 약화됨을 뜻하는 것이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하는 것이 기도이기에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라는 것은
늘 깨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은 무엇이 우리의 마음이 물러지게 하고
늘 깨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까?
그것은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육적인 욕구충족의 결과인 방탕과 만취가
기도의 정신을 흐트러지게 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일상의 근심도 기도의 정신을 약하게 한다는 것에 놀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영과 육의 영에 대해서 얘기하며
또한 기도와 헌신의 영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주님의 영을 거부하고 거스르는 것이 육의 영이라면
주님의 영을 기꺼이 영접하는 우리의 영이 기도의 영이고
주님의 영이 시키는 대로 하려는 우리의 영이
헌신의 영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므로 방탕과 만취만 육의 영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일상의 크고 작은 근심도 육의 영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일상의 근심이란 이 세상에서 무엇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언지 찾으려고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라면
근심이란 자기 뜻대로 아니 될까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와 근심은 마음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근심은 방탕과 만취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늘 하느님께 깨어있게 하고
근심은 늘 자신과 사람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려는 Positive한 노력과 더불어
방탕과 만취와 근심을 멀리하려는 Negative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는데
그 결심이 약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적으로 한 번 무엇을 결심하면
그것을 이룰 때까지 자기 결심을 허물지 않는 그런 강인한 성향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성향적으로 분위기, 기분에 좌우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좌우되는 그런 사람이 있지만,
여기서는 영적인 강인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씀과 연결시킬 때 마음이 물러진다는 것은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이 약화됨을 뜻하는 것이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하는 것이 기도이기에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라는 것은
늘 깨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은 무엇이 우리의 마음이 물러지게 하고
늘 깨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까?
그것은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육적인 욕구충족의 결과인 방탕과 만취가
기도의 정신을 흐트러지게 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일상의 근심도 기도의 정신을 약하게 한다는 것에 놀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영과 육의 영에 대해서 얘기하며
또한 기도와 헌신의 영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주님의 영을 거부하고 거스르는 것이 육의 영이라면
주님의 영을 기꺼이 영접하는 우리의 영이 기도의 영이고
주님의 영이 시키는 대로 하려는 우리의 영이
헌신의 영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므로 방탕과 만취만 육의 영에 따른 것이 아니고
일상의 크고 작은 근심도 육의 영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일상의 근심이란 이 세상에서 무엇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언지 찾으려고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라면
근심이란 자기 뜻대로 아니 될까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와 근심은 마음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근심은 방탕과 만취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늘 하느님께 깨어있게 하고
근심은 늘 자신과 사람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려는 Positive한 노력과 더불어
방탕과 만취와 근심을 멀리하려는 Negative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신부님 강론을 묵상하며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으며 기도합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늘 근심이 많은 저를 봅니다.
올 한해도 말씀 안에서 분에 넘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감사드려요^^
신부님! 저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크고 굳건한 마음..
사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도록 가득한 넓고도 큰 원기..
새로운 한 해도 말씀으로 믿음의 호연지기를 꿈꾸며 갈망합니다.
아! 이렇게 한 해가 갔습니다.
올 한 해 말씀 안에서 충만하셨습니까?
부족함이 있었고 아쉬움이 있었다면
내일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의 시작,
대림시기를 잘 지내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