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기쁨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함께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젊은 시절에 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까이 느끼고 싶었으나
하느님의 음성을 삼켜버리는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현존을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가면을 벗고 내면으로 들어가 내면의 진실과 대면하게 되면서
너의 탓이라고 고함치던 소리는 아버지 안에서 메아리로 돌아와
나를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었다.
아버지의 고요한 평화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요함 속에서 발견한 것은 측은한 눈빛으로 말없이 바라보시는 그분의 시선,
한없이 부드럽고 온유하신 눈빛이었다.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음은 아버지의 창조 계획안에 있다는 것이고
그 계획 속에서 숨 쉬고 살아있을 때만 그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기쁨과 평화와 자유, 내 행복이 달린 단 하나의 문제는
하느님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분 안에서 발견된 나와 내 안에서 발견된 하느님은 내 안에서 보물로 자리를 잡았다.
종교적 행위로 채웠던 신앙의 기초를 허물고
내 믿음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나를 깨우쳐 줄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은 하느님뿐이었다.
주님만이 나에게서 나를 해방하실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신을 믿어왔다. 그것이 죄였고 그것이 병들게 한다.
믿음의 중심을 바꾸는 회심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다.
그분의 현존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어는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독단과 거짓과 자만으로 내가 통치할 때는 어디에서도 그분을 발견할 수 없었다.
회심은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로지 자유로운 결단으로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며
그분의 현존 아래 자신을 두고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함께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