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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왕의 경배 (1423)

작가: 젠틸레 파브리아노 ( Gentile Fabriano:1370- 1427)

크기: 목판화 : 300×282cm

소재지: 이태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adormag0.jpg

 

 

이태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에 대종이 크리스챤 영성에서 다듬어진 성미술이다

중세기에 이태리는 비록 폭군이나 용병대장이라도 예술 부분에 대해선 대단한 관심과 안목이 있었으며 ,이들은 마음에 드는 예술가를 초청해서 작품을 남겼다.

예로 밀라노 공국의 폭군 일 모로(Il Moro)는 무지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으나 로마와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레오나르드 다 빈치를 초청해서 극진히 대접하며 보호하자 감동받은 다빈치가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성 마르코 수도원에 남긴 게 좋은 예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이태리적인 특징이 집약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피렌체 공국에서 메디치 집안과 견줄만한 재력과 영향력을 지녔던 스트로치(Strozzi) 집안의 가족 경당 제단화로 제작된 것이다

이 가문은 재력으로 메디치 집안과 경쟁 상대이면서도 재력 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안목과 관심이 대단했기에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던 처지였다.

 

이 가문이 피렌체시의 아름다운 성당인 산타 트리니타(Santa Trinita)에 가족 경당을 마련하면서 당시 피렌체에서 대단한 명성을 떨치던 작가에게 이 작품을 의뢰했다

재력과 교양에 있어서 내로라하는 재벌 수준의 부자가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의뢰한 것이니 자연스럽게 작품의 성격 역시 웅장하고 화려하게 마련이다 .

 

공현은 예수 성탄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다.

유다 베틀레헴에서 탄생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에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냄으로 만민의 구세주가 된 사건이다.

사방교회는 예수 성탄을 강조하는 반면 동방교회는 주의 공현 축일을 강조하고 있다.

공현(Epiphany) 이란 뜻은 나타남” (apperance ) “드러냄( manifestation)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역사가 흐르면서 이 축일은 공현절 , 빛의 축일(Feast of Light) , 삼왕의 축일 (Feast of three Kings)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예수 성탄을 주제로 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삼왕의 경배를 주 무대로 해서 그 아래에 예수 성탄, 성가족의 이집트 피난, 예수 아기의 성전 봉헌을 그림으로서 이 작품 앞에 서는 관객들이 예수 성탄의 신비 전체를 묵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색채 역시 아랫부분은 어두운 감청색으로 윗부분은 황금빛을 주제로 해서 당시로서는 최고의 호사를 표현했으며, 작가는 당시 유행하던 고틱 (Gothic)궁정 화풍을 도입해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삼왕의 아기 예수의 경배와 이 작품을 의뢰한 스트로치 가문의 영화를 무리 없이 조화시키고자 했다.

 

성서에서 동방 박사의 방문 부분은 오직 마태오 복음 2장에만 나타나고 있으며 내용 역시 다음과 같이 간결하다.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들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 마태오 2: 9- 11)

 

그러나 성서의 내용을 표현하면서 집안 자랑을 곁들이는 게 당시 정치 경제적 실세들 사이에 유행이었으며 이 작품 역시 이런 관점에서 중세적이며 피렌체 풍의 작품이다

성서에는 동방 박사 세 사람이 등장하고 있으나, 작가는 당시 유행하던 궁정 화풍의 그림을 구상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호화판 풍속화가 되고 말았다.

 

궁정 양식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실속 보다 외양을 더 강조하는 경향 때문에 이 작품 역시 겉모양이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되었으나 내용은 당시 문화적인 배경에서 알찬 것들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은 크기와 함께 내용에 있어서도 작가의 구상이 집약되어 있다

 

먼저 윗부분 왼쪽 편에서 부터 삼왕의 순례가 시작되고 있다

성서적인 내용과 무관하게 이 부분은 작가와 기증자의 신앙적 상상력이 집약되어 있다.

, 삼왕들이 각지에서 와서 바닷가에서 만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구세주를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이들이 산꼭대기에 서있다

 

이것은 크리스챤적인 구도 자세의 표현인데, 삼왕들은 지상 삶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고 천상 세계의 갈망으로 구세주를 찾아 떠난 참된 의미의 구도자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가문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한 것 같은 화려한 가운데서도 작가와 기증자의 순수하고 차원 높은 신앙이 드러나고 있다

 

삼왕이 만난 하늘에는 이들을 인도할 별이 떠 있으나 그리 화려하고 선명하지 않다

이것은 믿음이란 수학 공식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가 힘든 불확실성이 있기에 맑은 눈을 가진 사람만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삼왕이 만나 행진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이들은 언덕과 계곡을 지나 잘 경작된 땅이 있는 곳에 이르면서 중앙 아취를 통해 예루살렘 성이 등장하게 된다.

 

 

이 행렬이 오른편으로 향하면서 주님이 계신 마구간이 가까움을 알리는 과정에 참가자들의 고귀한 모습이 더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삼왕이라는 것은 수적으로는 빈약한 어떤 특정계층의 사람이 아니라 고귀한 삶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대표임을 드러내고 있다. ,

 

  adormag2.jpg

 

행렬이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계층의 고귀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대에 찬 희망을 서로 나누려는 듯 다양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다가 구세주가 계신 곳에 가까워지자 참가자들의 표정은 깊은 정적에 잠긴 모습으로 변하면서 마치 기도하기 위해 성당 앞에선 수도승들의 모습처럼 경건해진다.

 

작가는 이런 미세한 표정들의 변화를 통해 자칫 부잣집 잔치의 흥청거림에 휘말린 지각없는 군중들처럼, 정신을 잃기 쉬운 관객들에게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유일하고 최고라는 신앙의 표현을 전하고 있다.

 

 

 

 

성모님의 품에 안겨 있는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를 즉시 알아본 삼왕의 최연장자는 무릎을 꿇고 아기 예수에게 최고의 경배를 드린다.

 

여기에서 경배의 감동이 또한 최고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아기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본다면 무엄하리만큼 천진한 표정으로 인생 연륜으로 보나 세상 지위로 보나 대단한 처지의 첫째 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마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신하를 다루는듯한 모습인데,

이것은 아기 예수는 바로 세상을 구할 구세주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의 표정 역시 더 없이 흐뭇하고 느긋하시다.

 

세상 고귀함의 상징인 첫 번째 왕의 머리를 대담하게 어루만지는 어린 아들의 이 무엄한(?) 행동에 놀랄 만도 하신데, 어울리지 않게 성모님의 당연한 것을 보시는 듯 흐뭇한 표정은, 자기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한 성모님의 신앙표현이다.

 

성모님은 당신이 복음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비천한 여종” (루카 1: 38))이 아닌 에페소 공의회에서 천명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영광을 수용하신 신앙인의 모습이다.

 

 

두 번째 왕과 세 번째 왕은 아기 예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기 예수님께 가까이 있는 왕일수록 자세가 더 겸허한 모습은 만왕의 왕이신 주님 앞에 크리스챤이 보여야 할 더없는 겸허함의 자세이다.

 

  adormagb.jpg

 

 

행렬 참가자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그들의 다양한 복장, 표정 심지어 말을 탄 사람들의 마구(馬具)까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삼왕을 따르는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끌린 오합지졸의 군중이 아니라 고급인생을 갈망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왕의 뒤편에 기증자인 스트로치와 그의 아들이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과시적 신앙의 표현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태오 6:3)는 주님 말씀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정도의 봉헌을 했으니 자신과 분신인 자식을 삼왕의 뒤에 세우는 것은 어떤 의미의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 작가는 작품의 돈줄이 되어 준 아버지와 아들을 등장시켜 삼왕의 시선으로 주님을 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것 외에 이 작품엔 다양한 인간 모습 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희귀한 동물들 까지 대량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표범, 원숭이, 사자, 단봉 낙타, 고급 사냥개, 멋지게 차려 입은 다양한 복장의 기사 등 부유한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등장시키면서 베틀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가 구세주임이 드러나는 장엄한 내용을 축제 형식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공현 신학을 정확히 표현했다.

부잣집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취미삼아 키우는 희귀한 동물들의 나열이 아니라 , 탄생하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편협한 구세주가 아니라 ,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임을  여기에서 표현했다.

 

과거의 다른 작품과 달리 작가는 부잣집 경당에 모실 작품에 걸맞게 화려한 도구들을 등장시킴으로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의 왕임을 너무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돈줄이 된 기증자의 욕구도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작품을 제작하다 보니, 성서적인 바탕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 되었으나 ,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상도 읽게 만들었다는 면에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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