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과 인식의 변화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명료한 지각과 인식으로 시작되었다.
하느님에 대한 지각과 인식,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16)
자신에 대한 지각과 인식,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루가 4,8)
응답하는 신앙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요한 21,15-16)
“나를 따라라” (요한 21,1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손에 맡겨진 나의 자유를 도구로 삼아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신다.
성프란치스코는 회개하기 전 성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고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나의 마음속에 형성된 종교적 관념의 변화는 어둠의 실체와 그림자 속에 숨겨진
감추고 싶은 약함과 악습과 죄를 대면하면서 이루어졌고
실패와 실존적 공허의 충족을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삶을 정직하게 성찰하면서
조금씩 이루어졌다. 아이였을 때부터 내가 배운 가치는
나의 영적인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세상을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
완전한 것과 완전하지 못한 것으로 나누고 구분하면서 성장해왔다.
도덕과 윤리의 엄격한 잣대와 예의를 중시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삶은 수도원에 입회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그러한 가치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려는 의지에
치명적인 마찰을 일으켜 가치관의 혼란과 존재론적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그처럼 단순하지 않을뿐더러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섞여 있으며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순결하고 선하며 긍정적이고 완전한 편에 머물러 있도록 하려고
자신의 잣대와 저울을 윤리적인 규범으로 만들어 놓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당시에 음식을 먹기 전에 요구되었던 손 씻기를 거부하셨다. (마태 15,2)
그분은 손을 씻지 않은 사람을 불결한 사람으로 규정짓고 자신들은 정신적으로 우월하다는
허세를 부리는 그들의 위선을 경계하셨다.
나는 순결하고 착한 것처럼 보이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으나
그분은 내가 선하게 보이고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고 저지른
나의 위선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들보와 티”의 이야기는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자신의 선함에 도취 되어 한치의 앞을 보지 못하면서 존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하신 것이다.
종교적 관념이 만든 내려다보는 시선은 우리를 선한 사람인 척 가장하게 만들고
우리의 실상을 부정하게 만들며, 우리의 악을 다른 곳에 투사하게 만들면서도
자신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외적이며 형식적인 겉치레의 신앙은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선하며 사랑스럽고
온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정직한 성찰과 정직한 지식은 자신의 어둠과 숨겨둔 진실을 대면하도록 돕는다.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겸손하고 정직하게 고백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사람은 이처럼 요긴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신이 거룩한 사람이 되면 될수록 위선을 더욱 교묘하게 위장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약함과 악습과 죄를 감추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 (2고린 12,10)
부도덕한 가난뱅이 성프란치스코가 그렇게 살았다.
교회 안에는 이처럼 부도덕한 소수만이 약한 자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일하심을 안다.
작음과 단순함의 길, 가난과 겸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자비와 선하심이 흘러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예배와 희생의 경쟁에서 다투지 않고, 나서지도 설치지도 않으며,
자랑하거나 비교하고 증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평화롭고 조용하며 기쁨에 차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채워주시는 분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만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고백하는 하느님과 나의 실존에 대한 정직한 지각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영성의 기초인가를 알아차리고 예수님의 인간성 안에서 표현된 말씀과
그분의 관심사와 측은하게 돌보시는 그분의 마음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나의 약함에서 비롯된 악습과 죄와 감추어 둔 어둠을 내어놓고
베드로의 고백에서 보았듯이 관계를 재설정하는 기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16)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루가 4,8)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요한 21,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