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믿음의 부자인 신앙인이라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상의 부자와 믿음의 부자를 비교하며 얘기를 할까 합니다.
야고보서는 세상의 부자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얘기합니다.
모든 부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세상의 부자란 이 세상살이에 필요한 돈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들은 보통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존중하고 돈이 없으면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또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에 돈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돈만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먼저 돈의 노예가 되고 남도 돈으로 억누릅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자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기에
그들에게 돈은 필요한 정도의 것이지 그 이상이 아니며
그의 우상이나 주인이 되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부자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무엇이 많은 것이고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까요?
덕이 많은 사람이고 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일까요?
그럴 것입니다.
믿음의 부자는 틀림없이 돈보다 덕이 많은 사람 곧 후덕한 사람이고
돈보다 선을 더 중시하여 자선을 통해서 적선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니 돈이 많다고 우대하고 없다고 차별하겠습니까?
그는 돈의 그으름을 전혀 타지 않고 그을음이 비켜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관건은 어떻게 후덕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인데
믿음의 부자는 그 덕을 자기 수행을 통해 쌓은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덕의 원천이라고 하듯
덕의 원천이신 하느님 덕분에 지니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자말에서 덕분德分이란 덕을 나눈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원님 덕분이라고 하면 원님 덕에 내가 덕을 보는 것이고,
하느님 덕분이라면 하느님의 덕을 우리가 나누어 지니는 거지요.
이것이 다 하느님께서 당신 덕을 나누어주시는 덕분인데
그것이 사랑이고 그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덕을 보는 사람인 거지요.
우리 모두 하느님 덕분에 믿음의 부자들이 되는 오늘이 되시길 빕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아무리 달라도 하느님의 같은 자녀로 사는 우리)
http://www.ofmkorea.org/320036
19년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자이기도 하고 사탄이기도 한 우리)
http://www.ofmkorea.org/196588
17년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사탄되기 참 쉽구나!)
http://www.ofmkorea.org/99146
14년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선택적 무지)
http://www.ofmkorea.org/60412
12년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사랑을 하는 사탄)
http://www.ofmkorea.org/5570
11년 연중 제6주간 목요일
(미지의 구름에 무지개처럼)
http://www.ofmkorea.org/4874
09년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우리 삶의 사탄들)
http://www.ofmkorea.org/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