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으로 주신 선물
수치심을 덮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창세 3,21)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는 어머니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아담과 그의 아내를 서로를 돕는 짝으로서 창조하셨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보호하시는 분이시며
서로 반대되는 것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수치심을 감추려는 본능이 영적인 성장을 멈추게 한다.
잘못과 죄와 넘어짐이라는 수치를 감추려다가 거짓말을 하게 되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 때문이다.
실존적 정직과 깨끗한 마음 없이는 하느님과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수치심을 드러내 보이는 정직한 용기와 겸손으로 영적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수치심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돕는 짝은 남자나 여자와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의 모든 관계는 존중을 바탕으로 기초를 마련하지만
겸손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도우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매력이 있을 때 효과적이다.
겸손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으며,
겸손은 믿음과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하나의 짝을 이룬다.
행동하는 신앙은 행동하는 자비와 함께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신다.
“보십시오! 그분은 어좌로부터 동정녀의 태중으로 오신 때와 같이 매일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매일 우리에게 오십니다”
(성프란치스코의 권고1,16-17)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와서 배워라” (마태11,29)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겸손은 나를 아는 것만큼 하느님과 가까이 머물도록 돕는다.
겸손 안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사라지고 더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하느님의 손에 겸손하게 자신의 자유를 내어드리게 되면
나는 사라지고 그분처럼 닮으려는 마음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겸손이 가져다준 이러한 변화는 편안한 양심으로 좋은 친구를 사귀고
영감을 주는 좋은 책과 더불어 자신의 인생을 생동감 있고 풍요롭게 가꾼다.
인간의 수치를 덮어주시고 가려 주시는 하느님께서
반대되는 것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는 영성의 길이
겸손하게 수치를 받아들이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행동하는 신앙은 겸손과 짝을 이루어 사랑에 빠지게 한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짝’들
성프란치스코의 덕들에게 바치는 인사
지혜와 단순성
가난과 겸손
사랑과 순종
성프란치스코의 악습을 몰아내는 덕
사랑과 지혜로 두려움과 무지를 몰아냄
인내와 겸손으로 분노와 마음의 동요를 몰아냄
기쁨과 가난으로 탐욕과 인색을 몰아냄
고요와 묵상으로 걱정과 방황을 몰아냄
주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원수의 침입을 몰아냄
자비와 신중함으로 완고함을 몰아냄
예수님과 너와 피조물과 황홀한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좋은 삶이 있을까?
매력을 느낄 만큼 좋은 것이 있을 때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을 아는 만큼 겸손하고 하느님을 아는 만큼 좋은 믿음
겸손에 성장할수록 기쁨도 커지며 기쁨이 커지면 수치심은 저절로 자취를 감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거룩한 ‘짝’으로 황홀한 사랑에 빠진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