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245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요즘은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걱정들입니다.

 

사법부의 권위, 통치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요즘 권위가 떨어진 것을 얘기함은 그런 권위를 말함이 아닐 것입니다.

스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성직자들의 권위도 전과 비교할 때 별로 없음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다른 이들보다 스승과 성직자들의 권위가 사라짐을 걱정합니까?

그것은 이들이 바로 가르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이들의 권위가 있어야

이 길로 가던 사람이 저 길로 길을 바꾸고,

방황하던 사람이 마음을 잡고 올바른 길을 가며,

주저앉아있던 사람이 다시 기운을 차려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인지 멘토니 힐링이니 하는 서양말이 요즘 유행입니다.

멘토Mentor는 단순한 지식전달자와 기술전달자가 아닙니다.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고 중요한 순간 옳은 판단을 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도나도 멘토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을 비판적으로 얘기하자면 스승을 깔아뭉개면서,

멘토가 없으니 멘토가 있어야 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우습기도 하지만

나이든 사람으로서 그리고 수도자요 사제로서 반성적으로 얘기한다면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성직자로서 우리 기성세대가 권위를 상실하였음을 마음 아파합니다.

 

부모는 부모답고,

스승은 스승답고.

성직자는 성직자다웠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직능적 권위,

권력적 권위,

직위적 권위,

주둥아리 권위는 권위가 아닙니다.

 

그다움으로 지니게 되는 존재적 권위.

실천하는 바를 가르치는 실천적 권위.

사랑으로 다가서고 이끄는 동반적 권위.

행복으로 행복에로 이끄는 행복한 권위.

이런 것들이 진정한 권위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뛰어난 권위는 영적인 권위가 아닐까요?

그런데 그게 오늘 복음의 주님처럼 악령들을 퇴치하는 그런 권위인가요?

 

그런 영적인 권위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영적인 권위는 없더라도

육의 영을 분별하고 부끄럽게 하는 영적인 권위, 그래서

지상이 아니라 천상을 갈망케 하는 영적인 권위만 있어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권위가 있어야 함을 힘주어 얘기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저 자신에게 하는 얘기지요.

제가 바로 성직자이고 수련자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올해 수련자는 대부분이 20대 초반이기에 더 그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권위가 아니라 사랑으로 느껴지는 권위,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앞서 사는 영적 행복의 권위,

이런 권위가 제게 있어야 함을 무겁게 느끼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7Aug

    연중 21주 화요일-무지에 대한 무지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을 읽다가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명색이 율법 학자인데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
    Date2013.08.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4057
    Read More
  2. No Image 26Aug

    연중 21주 월요일-하늘문은 여닫는 것은 우리가?

    “불행하여라.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의 복음은 주님께서 유대 지도자를 꾸짖으시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호되게 꾸짖으시는지 이들과 같은 부류인 제가 사뭇 듣기 거북하고, 어떤 것은 너무하다...
    Date2013.08.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4327
    Read More
  3. No Image 25Aug

    연중 제 21 주일-성당 문이 곧 천당 문은 아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오늘 복음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 받을 사람은 적겠냐고 여쭈니 주님께서는 구원의 문은 좁으니 그리로 들어가려 애쓰라고 대답하시면서, 만일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어떤 사람이 주...
    Date2013.08.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3716
    Read More
  4. No Image 16Aug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연중 제19주간 금요일(마테 19,3-12)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완고함을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세다"로 풀이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Date2013.08.16 Category말씀나누기 By신대건안드레아 Reply0 Views3060
    Read More
  5. No Image 07Aug

    연중 18주 수요일-개의치 않기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가나안 부인은 자비를 베푸시라고 주님께 소리를 지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치 않으십...
    Date2013.08.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5 Views5518
    Read More
  6. No Image 06Aug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편애가 아니라 사명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오래 전부터 의문이었던 것을 이번 축일에 묵상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세 제자만을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르셨는지 말입니다. 겟세마니에서 피땀 흘리실 때와 회당...
    Date2013.08.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4235
    Read More
  7. No Image 05Aug

    연중 18주 월요일-마음

    “예수께서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온 많은 군중을 가엾이 보시어 병도 고쳐주시고 빵의 기적도 일으키시어 먹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가엾은 마음에 대해 묵상해야겠다 생각...
    Date2013.08.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334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000 1001 1002 1003 1004 1005 1006 1007 1008 1009 ... 1355 Next ›
/ 135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