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에는
세례의 물을 깨끗하게 하신 것의 의미,
당신 지체들을 깨끗하게 하신 것의 의미 등 여럿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례의 모범을 보이신 것의 의미가 더 도드라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듣기에 매우 거북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요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보면 비리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두 가지는 쯤으로 여깁니다.
“비리 한두 가지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하고 깔아뭉갭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경제만 나아지게 한다면
모든 것 눈감아 주기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정치가들이
과거 자신의 비리에 대해서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뻔뻔하며
지금도 탈법, 위법을 대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도자들만 나무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들을 뽑았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지금도 괜찮다고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권에서는
깨끗한 것을 내세우던 사람들의 비리가 드러나자
사람들은 깨끗하다고 떠들어대더니 비리가 있다고 분노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가증스러움과 실망스러움 때문에 분노를 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바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깨끗한 것을 내세우지 않고 능력을 내세웁니다.
깨끗한 것을 내세우지 않으니까 깨끗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그들과 우리 국민 사이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면 깨끗하지 않아도 내세우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까?
더러운 것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뭉개고 있어도 됩니까?
똥을 뭉개고 앉아 있으면 우리는 기절초풍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뭉개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죄에 대한 이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의 죄에 대해 내가 침묵하고
나의 죄에 대해 네가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나의 죄에 대해 침묵하는 것입니다.
다른 불편함이나 불만에 대해서는 즉시 아우성치면서
나의 죄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게 침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정말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많이 겸손해집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얼마나 뻔뻔해지는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얼마나 관대해지는지.
이런 저에게 주님의 세례는 모범을 보이며 가책케 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으시다니!
프란치스코의 회개가 생각됩니다.
의사의 권고에 의해 마지못해 닭고기 국물을 먹은 프란치스코,
사순절에 그가 당연히 단식을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텐데
닭고기 국물까지 먹었으니 너무 가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밧줄로 그의 목을 감아 질질 끌고 다니며 외치게 했지요.
“닭고기 국물을 먹고 살이 뒤룩뒤룩 찐 이 걸터듬이를 보시오!”
이것을 보고 욕심 사납던 사람들이 가책을 받아 회개케 됩니다.
주님의 세례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결코 showmanship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절실한 호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에는
세례의 물을 깨끗하게 하신 것의 의미,
당신 지체들을 깨끗하게 하신 것의 의미 등 여럿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례의 모범을 보이신 것의 의미가 더 도드라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듣기에 매우 거북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요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보면 비리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두 가지는 쯤으로 여깁니다.
“비리 한두 가지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하고 깔아뭉갭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경제만 나아지게 한다면
모든 것 눈감아 주기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정치가들이
과거 자신의 비리에 대해서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뻔뻔하며
지금도 탈법, 위법을 대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도자들만 나무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들을 뽑았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지금도 괜찮다고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권에서는
깨끗한 것을 내세우던 사람들의 비리가 드러나자
사람들은 깨끗하다고 떠들어대더니 비리가 있다고 분노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가증스러움과 실망스러움 때문에 분노를 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바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깨끗한 것을 내세우지 않고 능력을 내세웁니다.
깨끗한 것을 내세우지 않으니까 깨끗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그들과 우리 국민 사이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면 깨끗하지 않아도 내세우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까?
더러운 것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뭉개고 있어도 됩니까?
똥을 뭉개고 앉아 있으면 우리는 기절초풍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뭉개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죄에 대한 이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의 죄에 대해 내가 침묵하고
나의 죄에 대해 네가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나의 죄에 대해 침묵하는 것입니다.
다른 불편함이나 불만에 대해서는 즉시 아우성치면서
나의 죄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게 침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정말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많이 겸손해집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얼마나 뻔뻔해지는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얼마나 관대해지는지.
이런 저에게 주님의 세례는 모범을 보이며 가책케 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으시다니!
프란치스코의 회개가 생각됩니다.
의사의 권고에 의해 마지못해 닭고기 국물을 먹은 프란치스코,
사순절에 그가 당연히 단식을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텐데
닭고기 국물까지 먹었으니 너무 가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밧줄로 그의 목을 감아 질질 끌고 다니며 외치게 했지요.
“닭고기 국물을 먹고 살이 뒤룩뒤룩 찐 이 걸터듬이를 보시오!”
이것을 보고 욕심 사납던 사람들이 가책을 받아 회개케 됩니다.
주님의 세례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결코 showmanship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절실한 호소입니다.
"닭고기 국물을 먹고 살이 뒤룩뒤룩 찐 이 걸터듬이를 보시오!”라고
자신의 허물에 대해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성인의 용기에 고개를 숙입니다.
"용기에는 정직과 예의가 따라야 한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삶의 롤 모델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굳게 되새기는 주일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