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옥연 아녜스 자매님의 팔순을 축하드리며
삼위일체 샘에서 흐르기 시작한 자비의 물줄기가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경호강에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저희 형제들을 위하여 긴 세월 동안 봉사해 주신 자매님의 팔순을 맞이하여
80년 동안 한결같은 사랑으로 자매님을 돌보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자매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자매님을 만난 것은 86년도 초 성심원에서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성심원과 장성에서 살면서
자매님의 노고와 헌신적인 사랑을 보아왔습니다.
자매님께서는 저희 형제들을 가족같이 생각해 주셨습니다.
자매님은 늘 기도하셨고 그 기도는
형제들의 필요를 기분 좋게 채우려는 행동하는 자비로 드러났습니다.
선을 어둡게 하는 인간의 헛된 환상들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세상에서
표현할 능력도 방법도 모른 채
묻혀버린 진실을 헤아리시는 분이 계심을 믿는 것은
자매님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통하여 마음 놓고 일하시도록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자유를 하느님의 손에 내어드리려는 믿음을 보았습니다.
한 개비 성냥으로 능히 지옥의 불바다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불씨,
죄의 끈질긴 유혹과 목덜미에 휘휘 감기는 고독과 외로움,
좌절에 기울었던 그만큼이나 헐벗은 영혼의 추운 눈시울을
따스한 불가에 녹이고 싶은 마음을 보았습니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날
창문을 때리던 빗줄기의 그 사나운 주먹질에
삶의 애환과 무게를 돌아보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인색한 저울로 사람을 달아 따지는
이반과 몰이해의 사나운 돌팔매들이 부산히 바람을 가르고 다가올 때
아무도 이를 막아줄 방도를 찾을 길 없어
하늘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의 향을 올리던 일을 압니다.
살아 있는 건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품에 안겨본 사람만이 그 품을 압니다.
가슴 태우며 죄인들을 품는 아버지의 품
심장에서 전해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교감,
거기에서는 내가 없고 그분만이 남습니다.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고요 속에서 진리를 품은 가슴으로
전혀 다른 너를 향해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흔적 없는 선으로 말하고
소리 없는 눈물로 비난의 욕구를 삼키기 때문입니다.
죽으면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를 자매님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은 참을 수 없는 봉오리
꽃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더는 못 참고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어쩔 줄 모르는 기쁨이 봉오리를 열면
우리는 모두 꽃이 됩니다.
자신의 체온으로 얼어붙은 영혼을 녹여주려는 꽃이여!
주고 또 주어도 매번 줄 것이 모자라는 헌신에의 조바심
동반의 여정에 부축의 손길로
생명을 품어 기르려는 자매님이 있어
우리는 행복합니다.
2022년 3월 14일 장성 수도원에서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