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또다시 비유를 드시는데
오늘은 주인과 소작인 관계에 대한 얘기입니다.
말하자면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느님이고 우리는 소작인이라는 건데
저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러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고작 소작인이라니 말입니다.
아들과 상속자가 아니라는 말이잖아요?
그래서일까 오늘 소작인들 마음이 이해가 되고,
소작인들이 일으킨 반란도 이해가 됩니다.
소작인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반란을 일으켰을 겁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여러 차례 우리가 하느님의 상속자라고 하잖아요?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로마 8, 17)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 7)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소작인이라고 하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상속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고 어떤 말이 맛습니까?
주님 말씀이 맞겠지요.
소작인이라는 것은 우리의 근본 정체성이고,
상속자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승격된 정체성이지요.
이것을 달리 얘기하면 그리스도를 벗어나면 소작인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상속자라는 말이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그리스도 신비체론을 얘기하잖아요?
그러나 관건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사는 것입니다.
지체에서 떨어져나가거나 지체로서 살지 않으면
상속권은 얻을 수 없고 소작인도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처럼 살면 아들로서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은 아들로서의 사랑을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고,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은 지극한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자비와 용서라면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은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거역하면서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불순종하며 어떻게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소작권을 빼앗길까 두려워 순종할 수도 있지만
진정 하느님을 아버지로 사랑하여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두 가지 곧 두려움과 사랑을 합친 것이 경외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소작인의 비유로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침받는 오늘
경외하올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