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른여덟 해를 앓은 사람을 고쳐주신 것이 시빗거리가 되자
오늘 주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안식일에 일을 하신 것만으로도 시빗거리가 되고 박해를 하려고 하는데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을 동일시하시니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이 되어
이제는 신성모독죄로 죽이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느님과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불경죄를 짓는 것이지만
오늘 요한 복음의 주님은 수다스러우시고 더 심하게 얘기하면
너절하게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설명인지 변명인지를 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간단하게 종합을 하면
그것은 <창조와 구원>입니다.
저는 가톨릭 전례를 매우 사랑하고 특히
오랜 전통의 축적인 미사 경본을 사랑하며
미사 경본 안에서도 감사송을 더 사랑하는데
연중 시기 공통 감사송 2는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선으로 창조하시고,
정의로 책벌하셨으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비로 구원하셨나이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얼마나 잘 요약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창조하신 좋은 것들을 책벌도 하시지만
책벌도 구원을 위한 것이기에 결국은 구원을 하시는 것인데
그 구원 사업을 하시는 분이 우리 주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을 선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기에 모든 것을 당신 마음에 들게
만드실 수 있으시고, 그래서 당신이 만드신 것을 싫어하실 리 없으십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는
지혜서 11장 23-4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된 피조물 중에 우리 인간은
사랑으로 주신 자유 의지를 가지고 죄를 짓기에
책벌을 하시지만, 이 또한 구원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으시고,
그래서 책벌도 하시고 구원도 하십니다.
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이런 하느님 사랑을 어미의 사랑에 빗대어 얘기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우리도 하느님처럼 그리고 어머니들처럼 창조와 구원의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