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어제에 이어 야훼의 종의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야훼의 종의 두 번째 노래인데
지금 야훼의 종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 하면
힘이 빠지고, 지치고, 허탈감까지 드는 상태입니다.
야훼의 종으로서 소명을 받고 그것을 수행하는 중인데
현재까지는 그 수고가 헛수고가 된 것입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심사가 복잡하지요.
오늘 복음의 주님처럼 마음이 산란한 겁니다.
지금까지 고생고생하면서도 근근히 버텼는데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해도해도 안 되는데 괜히 고생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까지 해온 일이 과연 내가 할 일인지, 아니면 허망한 일인지 의심도 들면서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도 들면서 마음이 갈라져 복잡한 겁니다.
어제는 힘든 하루였습니다.
원래 주말을 쉬었다가 다시 하는 월요일의 식당 일이 많은데다
손님도 평소보다 배로 많이 오셨고,
문제를 갖고 찾아온 분들의 상담도 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울한 기분이 새벽부터 제 안에 들어와 똬리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의 나눔에서 그런 낌새를 채신 분들도 있을 텐데
그래서 저는 어제 사뭇 어두운 나눔을 하였지요.
그래서 왜 이런 우울한 기분이 제 안에 들어왔을까 생각해보니
하나는 성주간에 들어서면서 주님의 가까워진 죽음이 저를 우울케 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제 주변에 제가 사랑하고 그래서 계속 기도해드리는 분들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거나 나빠지는 얘기가 쌓이면서 우울감도 쌓였던 것입니다.
사실 며칠 전에는 하느님께 원망하고 분노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물론 제게가 아니라 주변의 아프거나 어려운 분들에게.
그러다가 이런 반성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데 그분들과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내가 이렇게 우울감에나 빠져 있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악마적인 감정이다.
그러니 그분들을 조금이나마 사랑하고 진정 사랑한다면
내가 이렇게 우울감에 빠져 있었서는 안 되고 '끙'하고 힘을 내야겠지.
어제는 여기까지 반성하고 새롭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묵상하면서 새로운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원망과 분노만 하였지 하느님께 힘을 얻지 않은 저였고,
하느님 빼놓고 내 힘으로만 우울감에서 일어서려고 한 저였습니다.
오늘 야훼의 종은 허탈감을 노래한 뒤 이렇게 이어 노래합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복음의 주님께서도 제자들의 배반을 생각하며 심란해하시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으시고 이렇게 미래를 내다보시며 힘을 내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배반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눈을 두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시선을 돌리심으로 희망을 되찾으신 겁니다.
나든 남이든 인간에게 시선을 두면 우울하고 허무합니다.
희망은 하느님께 시선을 둬야지만 가능하며
먼 희망도 가까이 가질 수 있음을 다시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