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야훼의 종의 세 번째 노래입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인해지는 종의 노래입니다.
그까짓 것들로는 내가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는 종의 노래입니다.
"나는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야훼의 종이라면 모욕과 수치를 줘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야훼의 종이 아니면 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인간적으로도 수치와 모욕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철면피가 되거나 모욕을 줘도 아예 받지 않거나
모욕을 줘도 모욕으로 받지 않으면 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준다고 다 받느냐입니다.
우리는 줘도 싫으면 받지 않고,
좋아할지라도 해가 되면 받지 않지요.
제가 몇 년 전 막노동을 할 때 저희들이 규정에 어긋나게 일을 하였는데
그것을 현장 소장이 모니터로 보고 우리 직속 상급자를 질타하고
우리는 그에게 아주 심한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두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잡부 중에서도 말단인 제가 욕을 해도 욕을 먹지 않으면 된다고,
'그까짓것' 하면 된다고 하니 모두들 얼굴빛이 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나이 많아 힘도 없고 일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저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저를 다시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욕을 해도 듣지 않은 것으로 하거나
욕을 해도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단련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오늘 야훼의 종의 경우는 이런 인간적 모욕 대처를 훨씬 넘어서는 거지요.
제자의 귀를 가지고 듣습니다.
"주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제자의 귀는 스승의 말을 듣는 귀이고,
스승의 말만 듣는 귀 곧 다른 말은 듣지 않는 귀입니다.
스승의 말 외에는 다 쓸데없는 말이기에 듣지 않는 귀입니다.
스승의 말 외에는 칭찬의 말도 쓸데없는 말인데
모욕과 수치를 주는 말은 더더욱 쓸데없는 말이지요.
이는 남의 말을 교만하게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의 말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 말을 따르다 보니 다른 말은 쓸데없어진 겁니다.
그런데 스승의 말은 딱 하나,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슬픔과 괴로움도 사랑하는 것이 더 높은 사랑입니다.
고통을 능가해버리는 사랑,
고통 때문에 더 불타는 사랑을 깨우쳐주시니 수치당하지 않고
자기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고 오늘 야훼의 종은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앞에서 모욕당하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철면피가 되는 것
곧 얼굴의 피부를 쇠처럼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영적 철면피 아니 영적 차돌피를 만드는 법입니다.
쉽지 않지만
피할 수 없도록 주시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사랑함으로써
조금씩 그리고 나날이 우리의 영적 피부가 두꺼워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