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의 묵상
죽음은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관계의 벽들이 무한대로 확장하는 상태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관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죽는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은 죽음의 장소에 계시지 않고
벽을 허물기 위해 스스로 내어주는 사람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받는 에너지의 고갈은 벽을 만드는 데 사용한 결과다.
독점과 소유를 탐내다가 소진했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의 손익 계산서를 손에 들고서는 벽을 허물 수 없다.
계산을 멈추지 않으면 나에게 집중된 에너지를 너에게 사용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에서 분출되는 신적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자리 잡은 계산기의 작동을 멈춰야 한다.
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사용되는 에너지는 위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침묵과 내적 고독은 벽을 허물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시간이다.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는 회심으로 아버지와 대면하게 되는 순간
나를 위한 손익 계산서는 필요가 없게 된다.
나만을 위해 쓰던 에너지를 너를 허용하는 에너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에너지는 자유 안에서 기쁨의 에너지로 바뀐다.
무덤은 나만을 위한 죽음을 묻는 장소다
죽음은 생명을 잉태하는 시간
관계의 벽을 허물고 신적 생명을 공유하게 하는 용서가
부활하기 위한 죽음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성금요일의 나의 묵상이었다.
신적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관계의 벽 속에서
평온하신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고요한 평화를 누리는 안식이 그리운 날이다.
2022.4.15. 성금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