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어제 마태오 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붙잡고 절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 요한 복음의 주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당신을 붙들지 못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어떤 것이 더 역사적인 사실에 맞느냐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왜 당신을 붙들지 말라고 하시는지
그 영성적 의미에 대해서만 집중하면 될 터인데
하나는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막지 말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어서 제자들에게 가서 말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주님을 붙잡는다고 주님께서 아버지께 올라가는 것이
방해받기라도 하기에 붙잡지 말라는 것일까요?
하늘로 오르려는 열기구가 밧줄에 묶여 못 올라가는 것과 같은 걸까요?
그럴 리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 때문에 주님께서 아버지께 올라가실 것을 못 올라가실 리 없을 겁니다.
이는 집착치 말라는 말씀일 것이고, 인간적으로 집착하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관을 땅에 묻으려 할 때 아들들은 그저 울기만 할 뿐이지만
딸들은 관을 붙들고 묻지 못하게 울고불고하는데
그런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것일 겁니다.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육신으로는 이미 저를 떠나셨지만
저는 한동안 어머니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꽤 지나고 이제 어머니를 놓아드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딸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더 오래전에 제 친구가 서른셋 나이로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허무감 등으로 친구에게 매여 있었는데
1년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꿈에 친구가 환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렇게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고 꿨어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때는 너무도 꿈이 선명하고 일어나서도 생생하여 일어나자마자
이제 친구는 하느님께로 갔고 하느님의 아들이구나 하면서 놓아줬습니다.
사실 이것은 꼭 죽은 사람뿐 아니라 산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누구도 하느님의 사람을 내 사람으로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마리아는 "마리아야"라는 부름에 "라뿌니"라고 응답함으로써
순간, 돌아가시기 전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돌아가는 착각을 했는데
그런 마리아를 주님께서는 정신 차리게 하시며 관계를 되돌리시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이제 더 이상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니라 너와 나-하느님의 관계이고,
너의 아버지이자 나의 아버지인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더 이상 제자라고 부르지 않고
내 형제라고 부르며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시지요.
그러니 마리아가 주님을 붙들고 있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형제들인 제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그 만남에 머물지 말고 이제 주님을 떠나 형제들에게 가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전해야 하고,
주님께서 오르신 하늘로 우리도 올라가야 함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땅에서 살지만, 하늘로 올라가야 함을 잊지 말고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