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오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주로 제자들을 동반하시는 주님께 대해 얘기했는데
오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누구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얘기의 주인공이 주님이 아닌 제자들인 것입니다.
두 제자 중 하나의 이름은 클레오파스이고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엠마오에 사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들은 주님과 함께 상경했다가 낙향하는 제자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에게 돌아가 자기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만난 사실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열두 사도 중의 하나는 아니고,
예수님의 더 큰 제자단 어쩌면 일흔두 제자단에 속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과 달리 열두 사도에 이어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는 얘기를 전하는데 아마
그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저의 추측입니다.
어쨌거나 이들은 주님과 함께 상경을 한 사람들인데
주님께서 돌아가시자 낙향을 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지금 낙심하고 실망한 상태로 낙향을 합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는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이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자단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그들은 주간 첫날 아침 엠마오로 가는 중이었는데
같은 주간 첫날 아침 여자들이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고
돌아와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을 다른 열한 제자와 듣고서 떠난 것일 겁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사도들은 헛소리라고 생각했다고 루카 복음은 얘기하고,
그래도 베드로만은 무덤에 가 빈 무덤을 확인했는데
다른 사도들은 이마저 포기했고 엠마오의 두 제자는
아예 주님의 제자단에서 이탈한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낙심하고 주님께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은 이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나타나시어
그 길을 동반하시며 마침내는 다시 제자단에 합류케 하십니다.
이것을 묵상하면서 저는 저희 수도원에 들어왔다가 떠난 형제들이 생각났고,
그들이 떠날 때 저도 그들을 찾아가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저의 여러 실패를 성찰케 되었습니다.
주님과 저의 차이는 결국 사랑의 차이라고 해야겠지만
그 사랑의 차이가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데 비해
저는 몇 번 설득해도 실패하면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일찍 포기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성소를 일찍 포기한 형제들을 저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에 비해
주님께서는 포기한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저의 또 다른 차이는 방법의 차이입니다.
주님과 비교할 때 제가 동반을 일찍 포기할 뿐 아니라
동반의 방법도 크게 차이 난다는 말입니다.
저는 대충 듣고 성급하게 그리고 훈계조로 설득을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오래 경청하고 동감해줍니다.
그러니까 동반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경청에 이은 동감의 사랑도 중요한데
얼마나 남의 말을 경청하느냐, 그리고 남의 실패와 실망과 고통을
얼마나 동감하느냐, 그만큼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빨리 실망하고 빨리 주님 따르기를 포기하는 나는 아닌지,
포기하고 떠나는 형제들을 빨리 포기하는 조급한 사랑의 나는 아닌지
성찰하고 반성하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