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오늘의 창세기는 어제에 이어 하느님의 창조를 계속 얘기하는데,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것도 같고 보시니 좋다는 것도 같지만
오늘의 창조는 복을 빌어주는 주는 것이 어제와 다릅니다.
말씀으로 창조만 하시자 않고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복을 내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왜 어제의 창조물에게는 복을 내리지 않으시고,
왜 오늘의 창조물에게는 복을 내리십니까?
다섯 째 날과 여섯 째 날에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창조하셨고
그 전에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덩어리에게 복을 내리시겠습니까?
며칠 전에 설날 명절을 지냈는데 그때 돌덩어리에게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한다고 돌덩어리가 복을 받겠습니까?
복은 받을 만한 존재에게 내리고
복을 누릴 만한 존재에게 주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덩어리 같은 인간에게 복이 주어지겠습니까?
저 같으면 그런 인간을 축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하느님은
동물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하느님은 당신처럼 창조의 대업을 잇는 존재만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낳는 존재,
그래서 생명을 번성케 하는 존재만이 축복의 대상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낳지 못하는 존재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고,
구약에서 아이 낳지 못하는 돌계집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낳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번성케 하고 있는가?
하느님의 복은 받아들이지 않고
똥이 되고 말 욕심만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창세기의 하느님은 이렛날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 날 쉬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저 물리적인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쉬신 날이고,
하느님이 없는 돌무덤 같은 날이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실 주님이 잠시 쉬고 계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낳는 일도 중요하지만 쉬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쉬는 일도 중요합니다.
쉬는 것도 일이고,
쉬는 것도 창조입니다.
쉬는 창조이고, 창조의 쉼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낳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그것은 창조적으로 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빈둥거리고 놀기만 하지 하느님 안에서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오늘의 창세기는 어제에 이어 하느님의 창조를 계속 얘기하는데,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것도 같고 보시니 좋다는 것도 같지만
오늘의 창조는 복을 빌어주는 주는 것이 어제와 다릅니다.
말씀으로 창조만 하시자 않고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복을 내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왜 어제의 창조물에게는 복을 내리지 않으시고,
왜 오늘의 창조물에게는 복을 내리십니까?
다섯 째 날과 여섯 째 날에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창조하셨고
그 전에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덩어리에게 복을 내리시겠습니까?
며칠 전에 설날 명절을 지냈는데 그때 돌덩어리에게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한다고 돌덩어리가 복을 받겠습니까?
복은 받을 만한 존재에게 내리고
복을 누릴 만한 존재에게 주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덩어리 같은 인간에게 복이 주어지겠습니까?
저 같으면 그런 인간을 축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의 하느님은
동물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하느님은 당신처럼 창조의 대업을 잇는 존재만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낳는 존재,
그래서 생명을 번성케 하는 존재만이 축복의 대상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낳지 못하는 존재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고,
구약에서 아이 낳지 못하는 돌계집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낳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번성케 하고 있는가?
하느님의 복은 받아들이지 않고
똥이 되고 말 욕심만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창세기의 하느님은 이렛날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 날 쉬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저 물리적인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쉬신 날이고,
하느님이 없는 돌무덤 같은 날이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실 주님이 잠시 쉬고 계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낳는 일도 중요하지만 쉬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쉬는 일도 중요합니다.
쉬는 것도 일이고,
쉬는 것도 창조입니다.
쉬는 창조이고, 창조의 쉼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낳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그것은 창조적으로 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빈둥거리고 놀기만 하지 하느님 안에서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쉬지 않아서 창조는 꿈도 못꿨습니다.
난 복을 받을 만한 존재, 복을 누릴 만한 존재인가?
오늘 말씀 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여정 사랑을 낳는 일에 전념 해야 겠습니다.
오늘은 외래 화장실 청소담당인 자원봉사자
자매님들이 다른 때보다 더 일찍 청소하러 오셨기에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했더니
빨리 화장실 청소하고 사제서품식에 가야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나는 무료병원에서 삯을 받고 일하는 삯꾼에 불과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주체하기가
어색했던지 급하게 나온 말이 ‘하느님 축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미안한 마음 반, 존경의 마음 반 뒤섞인 톤으로 말입니다.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했거든요.
사제 서품식에 가지는 못하지만
“하느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