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헛되이 믿는 것과 참되게 믿는 것을 얘기하면서
헛되이 믿는 것이 아니라면 복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지 못하는 믿음은 헛되이 믿는 믿음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헛되이 믿게 되었을까요?
이것을 오늘 저는 복음에 비추어 보겠습니다.
참되게 믿으려면 필립보처럼 열망이 있어야 하고,
열망에서 비롯된 궁구窮究가 있어야 하며,
궁구에서 비롯된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봤으면 아버지도 뵌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당신 안에 있는 것을 믿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데, 제 눈에는 그것이 마치 윽박지르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는데도 못봤다고 하지 못하고,
믿지 않는데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도들은 아뭇소리 못하고 있는데 필립보 사도가
용감히 나서서 자기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니 뵙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미 뵌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필립보 사도는 아직 못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를 뵙는 것으로 충분하겠다는 말은
아버지를 뵙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필립보는 아직 뵙지 못했지만,
뵙고 싶은 열망이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다른 열망은 없고 오직 이것이 자기의 열망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의 필립보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단에 속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주님께서 세례자 요한과 제자들 앞으로 지나가자 세례자 요한이
저 앞에 지나가는 분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분이시라고 가리키고,
그러자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가 주님을 따라가 보고는 베드로에게 말하고
그래서 같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데 필립보는 그들과 같은 고향이었으며,
이들에 이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보면 같은 제자 그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필립보는 주님을 만나기 전부터 세례자 요한과 함께 주님을 찾던 사람,
곧 구도자였고 궁구자였던 것이며 뵙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사람입니다.
궁구자란 궁구하는 자라는 뜻이고
궁구한다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는 것을 말함이지요.
몰라도 대충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끝까지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필립보는 끝까지 알고 싶었고,
하느님을 주님께 들어서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 눈으로 직접 뵈어서 알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보고 싶어하지 않고 동료 사도들도 같이 뵙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만 뵙게 해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충분하다고 하지 않고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헛되이 믿는 것이 아니려면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처럼
처음에 믿는 것이 실패했을지라도 끝까지 구도의 열망을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