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판공성사를 주다보면 간혹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가 없는데 왜 고백소에 들어오셨냐고 물으면
의무적으로 판공성사를 봐야 한다고 하니 들어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 없는 사람을 제가 죄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죄가 없을 수 있습니까?
크던 작던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이지요.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얘기를 하다보면 왜 죄 없다고 하는지 알게 되는데
이런 분들에게 죄는 엄청나게 큰 죄만 죄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질렀든지, 남의 돈을 크게 떼먹었든지,
간통죄를 저지르든지, 큰 죄만 죄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것쯤은 괜찮고,
돈을 조금 떼먹는 것도 괜찮고,
술집에서 가서 즐기거나 적당히 외도를 즐기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죄 관념에 있어서 이들의 또 다른 문제는 신앙인이면서도
세속적인 죄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죄만 아니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모른 체 하지는 않았는지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고,
하느님께서 더 싫어하시는 남에 대한 무관심은 죄가 아이고
남을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은 더더욱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런 면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것만도 어려운데
이 정도는 죄도 아니라고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그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살인죄도 용서하시는 큰 용서의 하느님이시지만
형제에게 성내는 작은 죄는 괜찮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형제에게 성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간음한 여인도 용서하시는 큰 용서의 하느님이시지만
음란한 생각을 하는 작은 죄는 괜찮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하느님의 체는 아주 촘촘하여 작은 죄도 다 걸러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저울은 아주 엄정하여 적당히 봐주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입국이 허용됩니다.
하늘나라는 하늘 법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입국이 허용됩니다.
이 세상의 법도,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랑을 요구하는 이 세상의 법도,
적극적인 사랑이 아니라
피해를 주지만 안으면 되는 소극적인 사랑의 이 세상의 법도,
웬만하면 서로 눈감아주는 이 세상의 법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안 되고
오직 하늘의 법도, 사랑의 법도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의 법도를 실천하는 사람만 입국이 가능합니다.
하느님을 싫어하면서
억지로 그리고 가까스로 하늘 법도를 실천하는 것은
마치 오기 싫어하는 자식을 자식된 도리로 오게 하는 것과 같기에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그래가지고는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지 참으로 행복하지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온전히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판공성사를 주다보면 간혹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가 없는데 왜 고백소에 들어오셨냐고 물으면
의무적으로 판공성사를 봐야 한다고 하니 들어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 없는 사람을 제가 죄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죄가 없을 수 있습니까?
크던 작던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이지요.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얘기를 하다보면 왜 죄 없다고 하는지 알게 되는데
이런 분들에게 죄는 엄청나게 큰 죄만 죄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질렀든지, 남의 돈을 크게 떼먹었든지,
간통죄를 저지르든지, 큰 죄만 죄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것쯤은 괜찮고,
돈을 조금 떼먹는 것도 괜찮고,
술집에서 가서 즐기거나 적당히 외도를 즐기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죄 관념에 있어서 이들의 또 다른 문제는 신앙인이면서도
세속적인 죄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죄만 아니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모른 체 하지는 않았는지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고,
하느님께서 더 싫어하시는 남에 대한 무관심은 죄가 아이고
남을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은 더더욱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런 면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것만도 어려운데
이 정도는 죄도 아니라고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그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살인죄도 용서하시는 큰 용서의 하느님이시지만
형제에게 성내는 작은 죄는 괜찮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형제에게 성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간음한 여인도 용서하시는 큰 용서의 하느님이시지만
음란한 생각을 하는 작은 죄는 괜찮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하느님의 체는 아주 촘촘하여 작은 죄도 다 걸러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저울은 아주 엄정하여 적당히 봐주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입국이 허용됩니다.
하늘나라는 하늘 법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입국이 허용됩니다.
이 세상의 법도,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랑을 요구하는 이 세상의 법도,
적극적인 사랑이 아니라
피해를 주지만 안으면 되는 소극적인 사랑의 이 세상의 법도,
웬만하면 서로 눈감아주는 이 세상의 법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안 되고
오직 하늘의 법도, 사랑의 법도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의 법도를 실천하는 사람만 입국이 가능합니다.
하느님을 싫어하면서
억지로 그리고 가까스로 하늘 법도를 실천하는 것은
마치 오기 싫어하는 자식을 자식된 도리로 오게 하는 것과 같기에
하느님께서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그래가지고는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지 참으로 행복하지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온전히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저울로 사랑을 달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