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물과의 관계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함께 계심은 하느님 나라의 구체적 진실이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우리 삶의 공간 안에서 발견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안에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에서부터 너와 나의 관계 안에 그분께서 머무르실 공간과 모든 피조물과의 나 사이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공간 안에서 하느님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실재하는 나라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분의 현존은 우리와 동떨어진 곳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의미를 지녀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변할 때만이 추상적이지 않고 실효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은 메시아(구세주, 그리스도)이시다. 자기 스스로를 온전히 내어주신 메시아시다. 그분의 유일한 관심사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만이 절대적이었다.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으며, 죄의 용서를 선포한 것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그 일을 양보하지 않았기에 유대 지도자들에게 죄인으로 판명되어 처형되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그 함께 계심을 잃지 않으면서 죽어간 것이다. 하느님이 함께 계신 곳에는 살리는 일이 발생한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나를 보는 사람과 나를 중심으로 하느님을 보는 사람의 삶은 전혀 다른 삶이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나를 보는 사람은 살리는 일을 하지만 나를 중심으로 하느님을 보는 사람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이 변하시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하느님이 변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변하는 나라다. 곧 서로 사랑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신 메시아이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5)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인하여 나 스스로가 변하여 하느님을 긍정하고 내 안에 하느님이 살아계시도록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을 통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깨닫게 되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예수께서 실천하셨던 일이 우리 안에서 발생하고 측은한 마음으로 관계를 돌보는 우리의 실천안에서 하느님이 살아 계신다.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흘러가는 거기에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함께 계심을 드러내 주는 말씀과 성체는 생명의 빵이다.
생명의 빵을 먹은 사람은 스스로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로 서로를 살린다. (요한 6,35-40)
빵을 먹은 사람이 할 일이 거기에 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