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신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다.
신자들 자신이 자기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쟁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쟁이'가 붙는 말은 뚜쟁이, 땜쟁이, 겁쟁이, 거짓말쟁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 높인 말이 아니고 반대로 약간 얕잡는 말이지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 제가 예수쟁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예수밖에 없는 사람,
예수한테 꽂힌 사람으로 저를 여겨주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진정 프란치스코처럼 예수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며칠 전 기도방에서 묵상을 하고 있는데 앉은 자리 정면에 걸려있는
다미아노 십자가의 주님께서 저를 같은 눈높이에서 보시는 거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보신다는 느낌이었고,
그때 저는 예수님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예수님께 저의 여생을 바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는데
그것은 묵상을 하기 전 첼라노의 프란치스코 전기를 읽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첼라노의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매일 계속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날 저는 다음 구절을 읽었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살아 본 형제들은 그가 매일 얼마나 끊임없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렸고, 성인의 말씀이 얼마나 감미롭고 부드러웠으며,
형제들과의 이야기가 얼마나 친절과 사랑이 담겨져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왔고 사랑의 샘이 밖으로 넘쳐흘렀고,
어디에서나 그는 늘 예수께 사로잡혀 있었다.
마음에 예수를 품고 있었고, 입에도 예수, 귀에도 예수, 눈에도 예수,
손에도 예수, 나머지 다른 지체에도 늘 예수를 모시고 다녔다."
물론 이런 묵상을 했다고 해서 한 번에 프란치스코처럼
예수님을 늘 달고 살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첼라노는 그래서 프란치스코에 대해 이런 얘기도 한 적이 있지요.
"계속 순종함으로써 육신도 기꺼이 따라오게 되었다.
습관은 흔히 천성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예수, 마리아"를 불렀고,
깜짝 놀랄 때도 "아이구머니"가 아니라 "아이구, 예수, 마리아"라고 하곤 했지요.
묵주를 늘 손에 들고 다니고,
"예수, 마리아"를 입버릇처럼 그리고 습관처럼 외고 다니면
저에게도 예수님이 저의 전신에 깃드심으로 저도 진정한 예수쟁이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