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5월 18일 수요일
1교부들의 말씀 묵상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2)
영적 열매는 실천으로 완전해진다
사랑에서 나오는 선행으로 우리 결합의 끈을 단단히 묶지 못하고 단지 말로만 믿음을 고백할 때 도달히는 결합의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는 실로 가지이기는 하지만 열매가 달리지 않은 죽은 가지일 것입니다. 성인의 말대로,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0 참조), 따라서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포도나무 몸통에 달려 있다면, 그런 사람은 농부의 낫에 잘릴 것입니다. 농부는 죽은 가지들을 모두 잘라 내어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태워 버릴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1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1. 유다인 예수
지난 30년 동안 많은 유다인 작가들이 예수께서 그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신학자들도 예수께서 유다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여느 유다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으셨다. 유다인 학교에 다니시며 시편에 따라 기도하는 법을 배우시고 구약성서에 씌어진 유다의 역사를 공부하셨다. 유다인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도 익히셨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유다 여러 유파의 토론에 참여하셨다. 사고방식을 보면 예수님은 전형적인 유다인이셨다. 하지만 유다교의 여러 종파가 벌이는 토론에 참여하시어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연 그분의 비범함이 드러난다.(20)
1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5월 영적 수련 성월 3주간 감사/찬양
금주간 성서 읽기 에페 1-6장
1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부 고대 그리스도교
제 2기 : 312-60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그레고리오 대교황까지
로마와 동방의 총대주교, 수위권 문제
로마 교회:
수위권 문제:
이 무렵 교회 안에 상급 수도 대주교 - 총대주교 - 구가 생겨났다. 니체아 공의회(325)는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와 그밖의 “교구”들이 각기 자신들의 지구에서 로마와 같은 이러한 상석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옛 관례”를 인가하였고, 예루살렘에는 명예상의 우위룰 보증하였다. 이로써 총대주교 등급이 공의회법으로 확증되었다. 공의회의 표현은 로마의 총대주교적 권리의 요구가 가장 오랜 것이고, 그것이 다른 데로 전용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콘스탄티누스가 330년에 수도를 구 로마로부터 신 로마, 즉 콘스탄티노폴로 불리게 된 옛 버잔탄으로 옮겼을 때,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치적 중심이 동방으로 이전되고, 콘스탄티노플의 권력이 증대됨에 따라 구 로마의 정치적 의미가 떨어졌다. 얼마 안되어 신 로마의 주교는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영향력의 상승은 우선 동방의 총대주교들과의 대결에서 일어났다. 콘스탄티노플의 제2차 공의회(381)에서 콘스탄티노플 주교좌에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보다 앞서고 구 로마 다음으로 직접 이어지는 명예적 지위가 명확하재 승인되었다. 그러나 총대주교좌 중에서 로마의 우위는 인정되어 있었다. 나아가 콘스탄티노플은 아직 총대주교구에 대한 하등의 재치권적인 요구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발전이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4세기의 교의논쟁에서 동방과 서방 사이의 긴장이 여러 번 일어났다. 아리우스주의와의 대결 과정에서 로마는 항상 확고하게 니체아 신경을 고수하였고, 아타나시오는 339년에 로마의 율리오 교황에게 보호룰 요청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아타나시오의 주교좌는 한 아리우스주의자에 의하여 점거되었다. 아타나시오는 로마에서 자신의 권리룰 위하여 투쟁하였다. 341년에 율리오 교황은 동방의 주교룰에게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이 펀지에서 아타나시오를 위하여 중재하였으나 격렬한 저항에 마주쳤다. 아타나시오를 복권시키기로 한 사르디카의 교회회의(342/343)는 처음으로 동서간의 분열을 드러냈다. 동방의 주교들은 아타나시오에 대한 승인을 거부하고 항의하며 교회회의에서 떠났
다. 서방의 주교들은 로마 주교에게 서방을 위한 최고 심의 결정권을 장중하게 의결하고, 아타나시오를 복직시키고, 동방의 아리우스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파문하였다. 반면 동방 사람들은 서방의 요구룰 거부하고, 서방의 교회회의들을 파문하였다. 이렇게 동서의 교회가 적의를 가지고 대치하채 되었고, 이 분열은 381년에 제거되었지만 가시적이 된 이 긴장 상태는 나쁜 유산으로 지속되었다. 분열은 그후의 수세기 동안에 확대되었고, 마침내 1054년의 결정적인 단절로 이어졌다.(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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