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매력의 향기로 끌어들여 흠뻑 취하게 한다.
매력은 좋은 본보기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하느님을 전달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섬세한 사랑의 매력이야말로
복음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모범은
성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를 통해 우리의 본보기요 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가난의 본보기요 작음과 겸손의 본보기며, 다정함과 친밀함의 본보기요
피조물을 통해, 피조물과 더불어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는 본보기이다.
좋은 모델을 닮으려는 내면의 요구들은 매력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나를 유인하여
마침내 그 힘의 최종적 근원에 다가가려는 욕구와 동기를 내면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생활방식과 관계들에 깊은 영향을 주는 모범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깊은 차원의 경험들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 느낌, 신앙,
내면의 미세한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는 섬세한 의식 속에서 하느님을 알아본다.
자연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과 미생물,
태양과 달과 별들, 사시사철의 변화와 구름과 날씨를 통해 하느님을 알아보고
너와 나의 관계 안에서 보는 사랑의 구체적인 작은 실천들은
경험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도록 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본보기와 원인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의 길로 이끄신다.
신적 잉태로부터 일상적인 삶, 십자가와 죽음,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인간 여정의 모델이 되셨다. 그 길을 먼저 걸으셨기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셨으며,
우리에게 희망의 존재론적인 기초를 놓아주신 것이다.
함께 아파하는 자비심의 신앙이 없다면 우리의 관계는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하느님으로 시작하여 하느님으로 끝나는 신앙은 자비와 선하심의 모범을 보는 것이다.
매력은 거기서 나온다. 무상으로 내어주는 자비심의 구체적 표현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적인 삶과 기도 생활이 매력을 끄는 것이 아니라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닐까?
사랑은 매력의 향기로 끌어들여 흠뻑 취하게 한다.
가난은 내려가는 향기로 끌어당긴다.
겸손은 내려놓고 허용하는 향기로 자유를 주며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를 통하여 너에게 흘러가게 함으로써
관계의 혁명을 불러온다.
이보다 더 향기로울 수 있는가?
이보다 더 큰 매력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