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오늘 주님께서는 어디 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시는데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머물 거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평화가 아닌 우리 평화가 머물 것이라는 얘긴데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을 주제로 나눔을 하고자 하는데
현실을 보면 평화를 선사하기는커녕 분란을 일으키고 평화를 깨는 사람이 많고,
평화를 깨는 이유는 그 자신에게 평화가 없기 때문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자기 안에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평화를 줄 수 있겠습니까?
평화가 없기에 불화를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제는 상반기 공동체 공동 피정을 위해 피정의 집을 갔는데
옆 집 개가 아침부터 계속 짖어대 제 마음의 평화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저 개는 왜 계속 짖어댈까?'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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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를 이해하고자 마음 먹고 관찰하고 생각해 보니
까치나 새들 한테는 짖지 않고 누군가 대상에게 짖어대는데
그 개의 경우 주인이거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짖어대는 거였습니다.
말하자면 호소하거나 토로하는 거였습니다.
배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거나
똥 누고 싶으니 풀어달라거나
외롭거나 편치 않으니 관심 좀 가져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없는 듯이 있으면 모두 평화롭게 되는데 이 개의 경우처럼
뭔가 불편하거나 결핍이 있거나 괴롭거나 하면 없는 듯이 있을 수 없고,
그것을 불평의 형태로, 요구나 주장의 형태로, 짜증이나 분노의 형태로
토로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평화를 깨고 불화체 하는 것입니다.
사실 내 배 부르고, 등 따습고, 만족하고, 평안하면
남에게 요구하거나 시비걸지 않고 없는 듯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처럼 안빈낙도할 수 있으면 가난해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욕심과 집착이 없으면 부유해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도가의 가르침처럼 없는 듯이 있으면 많은 사람 가운데 있어도 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어떤 것입니까?
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의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하셨고
오늘 제1독서에서도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고 하셨으며,
복음 환호성에서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고 하심으로
우리의 평화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되게 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평화는 받아 지니는 평화입니다.
받지 않으면 없는 평화입니다.
나의 평화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 지니는 평화요,
또 우리가 전하는 평화도 받을 사람이 있어야 전해지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도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제대로 우리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주님의 평화를 갈망하고
그런 다음 주시는 대로 받아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