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7월 6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앞으로 닥힘 위험에 대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시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시지 않아 성령께서 아직 내리시지 않았을 텐데, 제자들이 어
떻게 더러운 영들을 쫓아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 곧 아들의 권한으로 그 일
을 해냈습니다.
제자들이 파견을 받은 시점도 새겨볼 펼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파견된 것은 예수님과 함께 다
니기 시작한 초기가 아닙니다. 매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충분한 은혜를 받은 뒤에 비로소 파견되었습니다. 다시 밀해, 죽은 이가 살아나고 호수가 꾸지람 듣고, 악마가 쫓겨나고 중풍 병자의 다리가 낫고.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나병 환자가 깨끗이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에 권능이 담겨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확인한 다음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일을 하도록 파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팔레스티나에는 어떤 위험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말로 하는 비난에 맞서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더 큰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시며, 앞날을 대비해 제자들올 준비시키셨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6. 여성의 벗 예수
마르코 복음사가는 여자들도 남자 제자들처럼 예수님 을 따랐다고 말한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였다. 당시로서는 정말 새로운 일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단 중에서 남자들과 여자들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기에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그분 주위에 몰려들었을까? 분명 그분은 여자들을 대하시는 데 거리낌이 없으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여자들이었다고 네 복음서는 전한다.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주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십자가에 못박던 상황이었으니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 주위에 동조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해 주었다.(43)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7월 영적 수련 성월 1주간 회개/겸손
금주간 성서읽기 로마 9-13장.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개관: 서구 중세의 구분과 기본 구조
고대, 그리스도교, 게르만 민족:
중세 서양의 역사적인 발전은 고대, 그리스도교, 게르만 민족이라는 삼화음에 근거한다. 본질적인 것은 이 시기 교회사의 무대가 지중해에서 북방으로 이동한 사실이다. 특히 젊은 게르만 민족들의 교회로의 개종은 강한 효력을 발휘하였다. 게르만인들을 “야만’ 또는 ‘반야만”으로 상상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로마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확실히 여러 가지로 전쟁과 정복에서 그들 제국의 문화와 문명을 파괴한 “야만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시에는 그들이 로마 제국의 문명적이고 문화적인 업적을 존중하고 경탄하였으며, 또한 이 문화에 대하여 전적으로 개방적이고 교화의 가능성을 보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더 원시적인 문화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고대 그리스도교와 중세 사이의 무대 변화의 크기와 의의는, 높은 정신성을 지닌 그리스 ·로마적 공간의 고도로 발달한 도시문화와 게르만 부족들의 농촌적 환경 사이의 엄청난 대조를 분명히 깨달을 경우에만 올바로 파악될 수 있다. 그 엄청난 대립은 중세의 교회생활과 문화적 발전 전반에 대한 반응이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게르만 정신과 그리스도교가 서로 밀접하게 침투될수록 그만큼 서로의 영향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제 1기 (500∼700):‘
이 시기에는 선교를 통해 매우 피상적인 만남만이 있었다. 496년에 클로비스가 세례를 받고 백성들이 그의 길을 따른 후에도 이교적인 관습 · 풍습 · 관념은 2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프랑크인들의 생활을 결정지었다. 이 시기의 프랑크인의 역사를 저술한 투르의 그레고리오(538∼594)는, 이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집단 세례는 오랫동안 어떠한 내적인 회심을 야기시키지 못하였고. 세례 전후의 준비 부족은 세례를 받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수용이 종전의 생활질서와의 결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낳게 하였다,(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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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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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