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은지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혼인 성소와 다른 성소에 대한 것까지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얘기의 전개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간음한 경우가 아니면
함부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제자들은
남편의 처지가 그렇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른 것이라고 하시는데
바리사이나 제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인간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옛날 결혼의 경우 어른 또는 집안이 결혼 상대를 결정한 것에 비해
요즘은 당사자들이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진정 어떤 것입니까?
결혼이나 수도 생활이 하느님의 부르심입니까? 나의 선택입니까?
아무리 하느님의 부르심일지라도 내가 싫으면 걷어찰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결혼이나 수도 생활 모두 부르심이지만,
그 부르심을 내가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나의 몫이고,
그렇기에 아무리 하느님 뜻이어도 내가 싫다고 걷어차면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부르심보다 먼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것이 그분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보다 먼저 자유를 주셨고 그것이 그분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은총보다 먼저 자유를 주셨고 그것이 그분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거나 걷어차는 것은 자유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로 사랑하게도 하시고 싫어하고 미워하게도 하셨으며,
그 자유로 당신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을 뿐 아니라
그 부르시는 뜻을 사랑이라고 믿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신앙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인정치 않기에 걷어차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느님은
결혼이건
비혼이건
이혼이건
졸혼이건
또 수도 생활이건
그것을 통해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데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랄까 사랑은 행복이어야 하고,
신앙인이라면 그것을 사랑의 부르심이라고 믿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