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비롯하여 그리스도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그리고 하느님이 신비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리스도도 신자들을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으로 여기게끔 처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처신이 세상 사람과 똑같기에 말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하느님 신비를 관리하는 사람인지 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겠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정체성이자 신원 의식입니다.
자신들은 시시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종이지 죄의 종이 아니라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누구의 하수인도 아니라는.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이지 세상사의 관리인이 아니라는.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이기에 세상의 어떤 시비에도 말려들지 않는다는.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이기에 세상으로부터 어떤 판단도 받지 않겠다는.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이기에 하느님으로부터만 판단을 받겠다는.
이런 바오로 사도의 말은 즉시 프란치스코를 떠올립니다.
프란치스코가 복음 말씀대로 아버지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그의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는 프란치스코가 자기의 재산을
거덜낼 것을 염려하여 프란치스코의 소유권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세속 법정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니
그는 자기가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세속 법정에서 판결받지 않고,
교회 법정에서 판결받겠다고 하여 주교님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주교님과 사람들 앞에서 그 유명한 행동을 합니다.
바로 옷을 홀라당 벗어서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행동 말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다 돌려주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옷을 홀라당 벗은 것도,
아버지 것을 아버지에게 다 돌려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서 그가 한 선언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고 자유롭게 부르게 되었습니다.”라는 선언입니다.
더 이상 육신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선언이고,
그래서 전기 작가인 첼라노는 프란치스코를 내내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칭하지요.
비참하게 죄의 종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시시하게 세상에 속한 사람도 아닌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을
우리도 가지라고 가르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