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오늘 독서도 코린토 교회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꾸짖음입니다.
성도들 간에 문제가 있을 때 왜 세속 법정에서 심판받으려 하느냐는 지적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복음화해야 할 성도들이 세상에서 심판받으려 한다는 말입니다.
한때, 아니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보수적인 성직자와 신자들이
자기들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사람들이고 반대로 정의 구현 사제단은
대한민국을 망치고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발언과 활동을 하는 것이라며 사제단을 비판하고 반대합니다.
이들이 이런 비판을 하게끔 일부 사제들은 정치 편향적인 그러니까
마치 어느 정당의 정당원인 것처럼 그 정당의 잘못은 볼 줄 모르고
무조건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사제나 수도자가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제는 복음에 비추어 세상을 심판 또는 비판하는 것인데
실로 신앙인인 우리는 그리고 진정 복음을 사는 사람이라면
세상 가운데서 그저 복음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 복음적이고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심판 또는 비판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도 같은 뜻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제가 거듭 얘기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하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주님께서 산 위로 가시어 제자들을 뽑으신 다음,
제자들과 함께 평지로 내려오셨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산에 오르지 않는다면 주님처럼 가끔 산에 오르십시오.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산에 올랐을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산 위에서 보면 세상의 크다고 하는 것들도 다 작디작습니다.
그리고 밑에서 아웅다웅하는 것이 다 부질없음도 느낍니다.
그러니 성도들끼리 세상일로 다투지도 않을 것이고,
혹 다투더라도 다시 정신을 차린다면
세속 법정으로 그 분쟁을 끌고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아무나 이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일 때 그것이 내 존재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면 길길이 날뛸 것이고,
받아들여도 아무렇지도 않을 때만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산 위에 오른 사람,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나눈 사람이라야
큰 바다가 작은 돌에 출렁이지 않듯이 불의를 당하고도 담담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