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도록 정해진 동정 마리아께서
요아킴과 안나에게서 태어나셨음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동정 마리아는 여러모로 정해진 운명의 대표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느님께서 정하신 대로 살도록 태어났기에
정해진 운명에 가장 잘 순명하신 마리아에게서 배워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정하셨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가톨릭은 예정설을 믿지만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고
그래서 정해진 대로 살게 되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 사람 팔자는 다 정해져 있다는 식이 아닙니다.
팔자가 다 정해져있다면
그것도 구원될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정해져있다면
인간의 자유와 자유의지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결코, 그런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응답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그런 예정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또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이나 세례자 요한과 같이 미리 뽑으신 분만
성자와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성자와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고 그 성소에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에 응답하고 안 하고는 우리의 자유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자유를 또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자와 같은 모상이 되도록 정하시고 부르신 것도 사랑이고,
그것에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 우리가 정할 자유를 주신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면 사랑의 하느님을 믿어야 할 것이고,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지
멸망케 되도록 정하시거나 내버려두지 않으셨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대로 우리가 순종한 것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탄생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하느님의 결정이고 우리는 그 결정에
반대할 나조차 없었고 그래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부모에게 태어나고 이러한 나로 태어난 것은 하느님의 결정이고,
나는 이 부모가 좋다거나 싫다거나 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의 우리는 우리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섭리에 순명할 것인지 불순명할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자유와 자유 의지에 달렸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런 탄생과 탄생 이후의 삶에 있어서
하느님 사랑에 가장 잘 순종하신 분이
오늘 축일을 지내는 동정 성 마리아시기에
우리는 오늘 마리아를 기리며 본받고자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