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복음으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 대한 주님의 불행 선언이 끝났는데
주님으로부터 신랄한 질타를 들은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어떻게든지 주님을 옭아매려고 했다는 얘기로
어제 복음은 끝을 맺는데 오늘은 제자들에게 이런 그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응은 대적 수준이라고 봐야 할까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이지만 자주 실패하는 것이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큰 문제도 작은 문제로 만들어 해결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어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을
조심은 하되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십니다.
두려워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위선이 확산되고
그들의 위선에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를 적으로 몰 것까지 없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불행 선언도, 저주를 퍼부은 것이 아니라,
불행한 줄 알라는 경고요 충고였고,
회개하라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사랑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약자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강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약자가 강자에게 느끼는 것이고,
정말로 힘세신 분은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오늘 주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두려워하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다음
바로 뒤이어 하느님은 참새도 먹여 살리시는 분이라고 얘기하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모순된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니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님에게서 우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하느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