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628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섬김과 보살핌>

 

 

우리가 자주 사랑에 실패함은 왜일까?

 

 

물론 우리 안에 줄 사랑이 없어서이고,

우리 안에 사랑이 없음은 하느님께 사랑을 청하여 받지 않기 때문이지만

어떤 때 우리 안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너무도 강렬한데도 사랑에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사랑이 미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해서 실패하는데

많은 경우 사랑에 겸손이 밑받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섬기는 사랑과 보살피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보살피는 사랑은 그래도 잘하는데

섬기는 사랑은 여간해서는 잘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분명 그렇습니다.

 

 

화분의 화초를 가꾸고 병든 강아지를 돌보듯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라면,

나의 보살핌에 감사하고 잘 따르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라면

나의 사랑은 그에게 보탬이 될 뿐 아니라

내게도 큰 만족 되니 이런 사랑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보살펴줬는데도

그가 기꺼이 또는 겸손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나의 사랑은 분노로 바뀌고 심한 경우

보살핌을 거두고 파괴적으로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피는 사랑보다 섬기는 사랑이 더 어려운 이유이고,

정작 모셔야 할 부모는 모시지 않고

개는 반려견이다 애완견이다 하며 데리고 사는 이유입니다.

 

 

진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살핌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고 마지못한 듯 받아들이고

필요한데도 필요치 않은 것처럼 까칠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섬기기 위해서는 사랑에 겸손이라는 덕을 함께 갖출 뿐 아니라

이런 교만이나 까칠함이나 심지어 포악함까지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점잖고 고상한 사람에게는 겸손한 사랑을 하나

아니, 그저 보통 사람에게도 겸손하게 사랑을 보이나

감당하기 힘든 사람을 만나면 피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봅니다.

자기 혼자서는 얼마든지 겸손하고 사랑에 충만할 수 있습니다.

 

 

저로 말하면 이제 와서 젊었을 때처럼 교만하게 나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죄스런 나에 대해서 한껏 겸손하고

욕심스런 사랑을 할 만큼 힘이 넘치지도 않기에 작은 사랑에 만족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저에 대한 겸손은 있지만

너에 대한 겸손, 그것도 무례한 사람에 대한 겸손은 없고,

그를 섬기는 사랑, 그를 감내하는 겸손한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는 분들에게서도 비슷한 애기를 듣습니다.

젊었을 때는 남편과 아이들의 온갖 귀찮은 것 뒷바라지를 했는데

나이 들어 60이 넘어서까지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고.

아이들은 그래도 좀 감내하겠는데 남편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아무튼 섬김은 고통을 감수하는 겸손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섬기시겠다고 하십니다.

헌데 주님의 섬김을 받는 게 마냥 고맙거나 편하지만은 않은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1Mar

    사순 4주 월요일- 희망적인 믿음과 체험적인 믿음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왕실 관리의 아들이 치유되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백인대장의 종이 치유되는 얘기와 같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선 마태오, 루카 복음의 백인대장은 이방인이고...
    Date2013.03.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4437
    Read More
  2. No Image 10Mar

    사순 제 4주일- 화해, 관계의 회복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사절로 삼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다고 얘기합니다. 여기서 화해란, 한자로 화목할 화和, 풀 해解입니다. 매이거나 묶...
    Date2013.03.1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4895
    Read More
  3. No Image 09Mar

    사순 3주 토요일-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는 참 가증스런 죄인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리처럼 죄인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하지만 제가 실제로 불쌍한 사람이 되거나 사람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싫습니다. ...
    Date2013.03.0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4997
    Read More
  4. No Image 08Mar

    사순 3주 금요일- 다시 사랑하기

    “첫째는 이것이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다시 사랑하기...
    Date2013.03.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4901
    Read More
  5. No Image 07Mar

    사순 3주 목요일- 어느 수련자의 강론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를 쫓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
    Date2013.03.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3668
    Read More
  6. No Image 07Mar

    사순 3주 목요일- 뒤돌아가는 어두운 영혼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나의 반대자는 반대를 통하여 나를 돕는 사람이다. 이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반대자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저의 신...
    Date2013.03.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4502
    Read More
  7. No Image 06Mar

    사순 3주 수요일- 공기처럼 가깝고 햇빛처럼 공평한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이스라엘의 선민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글을 보기만하면 저는 예민해지고 거의 신경질적인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이 말씀도 그런 냄새...
    Date2013.03.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431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089 1090 1091 1092 1093 1094 1095 1096 1097 1098 ... 1421 Next ›
/ 142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