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을 맞아 루카 복음사가의 삶을 묵상하다 보니
나라면 주님의 복음을 어떻게 쓸까 생각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마태오 사도처럼 복음을 쓰지는 않을 것이고,
루카 복음사가처럼 복음을 쓰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것은 죄인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신 주님을
다른 어떤 복음사가보다 따듯한 시선으로 전하기 때문이지요.
한때 저는 곡을 썼고, 소설도 쓰려고 끄적거렸는데,
곡은 성가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고,
소설은 성서의 인물을 제 시각으로 그리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예를 들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나 키레네의 시몬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것인데, 당연히 주님과의 만남이랄까 인연을 중심으로
소설을 엮어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서의 인물을 소설화하는 것은 생각해봤지만
주님의 생애를 루카 복음사가처럼 기록하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전한다는 것은,
사실 예술적 호기심이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영적인 사랑에서 비롯되고, 영적인 사랑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베드로 사도나 사도들이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쓸 수도 있었고, 그들이 쓰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들이 쓰지 않을 것을 보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각기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얘기했잖습니까?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아무튼,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의 생애를 기록할 정도로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추종자들인 사도들의 활약인 사도행전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제자들의 활약을 자기가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은 자기 안에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이어지는 것이지만,
기록은 세상에 남기는 것이요, 자기 사후에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잊혀서도 안 되겠지만
사람들에게 잊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한 것은
주님뿐 아니라 세상을 사랑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만 아니라 사람들도 자기가 알고 있는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직접 들은 사람들 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려는 거였으니
그는 먼 곳에 있는 사람도 사랑한 것이고, 지금의 우리까지 사랑한 셈입니다.
저도 같은 지향으로 복음 나눔이란 형식으로 많은 글을 쓰고 있고,
그래서 지구 저편에서도 제 글을 읽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책으로 내면 좋지 않겠냐는 말도 종종 듣는데
그때마다 저는 계면쩍은 일이라 그럴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길이 남을 만큼 훌륭한 기록과 글이라면
내가 남기지 않아도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지녀야 할 것은 루카 복음사가처럼
주님을 진정 사랑하여 주님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과,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여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겠습니다.
내일 모레부터 삼일 간 저희 <여기 선교 협동조합>이 바자회를 합니다.
이번 바자회는 이주민과 취약 계층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이 목적입니다.
이 장학회는 한 분의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옛날에 야학을 했는데 그때 제자 가운데 하나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며
제가 하는 좋은 일에 써 달라고 성금을 하였습니다.
저는 제자의 이런 사랑을 한번에 써버리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의 좋은 뜻이 씨앗이 되어 더 확장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저희 <여기 선교 협동조합>에서 돈을 보태고,
이번 바자회에서 이 사업을 더 알리고 기금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바자회에 많이 들러주시고,
멀리 계셔서 오시지 못하더라도 기도로 함께해주시길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