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음 말씀이 제 눈에 탁 들어왔습니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죄인들이 주님 말씀 들으려 가까이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신앙인의 눈에는 죄인이라고 하는 그들이 실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사람이 죄인이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이 어찌 죄인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얘기한 죄인들이란 기준이 주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
곧 율법이나 로마법이나 당시 실정법을 기준으로 한 죄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처럼 신앙의 눈으로 보고 사랑의 눈으로 본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의인입니다.
또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한때 주님을 떠났었습니다.
하느님을 몰라서 떠났었을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어서 떠났었을 수도 있고,
세속을 더 사랑하여 떠났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통하여 이제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성찰할 때
우리는 주님 말씀이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벌이 꿀을 찾아 모여들듯
우리에겐 주님 말씀이 꿀이고 향기여야 합니다.
요즘 너무 향기를 찾지 않고 악취 나는 것을 찾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실로 많은 사람이 유투브를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데,
허비한다고 함은 그것들이 쓸데없거나 악의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왜 향기 나는 주님 말씀에 끌리지 않고
악취가 펄펄 나는 것들 곧 혐오를 조장하고,
극우든 극좌든 극단으로 치닫게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노력하게 하기보다는
실망하고 환멸을 느끼게 하는 잡글들에 끌리는 것입니까?
심하게 얘기하면 그들이 벌이나 나비가 아니라 똥파리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번 이태원 사건을 이용하여 돈벌이하려는 유투버들이
온갖 자극적인 사진이나 헛소문을 유포하는데
그런 잡글들에 끌리는 사람은 다 똥파리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말씀을 향기로운 말씀이라고 하며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전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말씀들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잘 받아들이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의 종이기에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며
내 주님의 향기로운 말씀들을 전해야 합니다.”
나는 벌 나비입니까?
아니면 똥파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