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어제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신 주님께서
오늘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정화는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곳에서 장사하던 자들을 과격하게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집이어야 할 성전을 자기들의 집으로 만들고,
기도하는 곳이어야 할 성전을 그들이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성전인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게 하느님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전이 우리가 모이는 곳 곧 집회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하느님 없이 우리만 모인다면 성전이라고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하지만
성전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특전적인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이 없는 우리끼리 만남은 있을 수 없고,
반드시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만남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따로 또 같이’ 입니다.
먼저 성전은 따로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어야 하는데
따로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자기 집이나 한적한 곳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우리가 하느님을 성전에서 따로 만나야 할 이유는 성체조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개신교와 달리 성당인 이유는 성체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우리가 교회라는 명칭보다 성당이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성체조배 모습을 우리의 성당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요 기도인 성체조배 없이
어떻게 가톨릭 신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고 걱정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성전에서 함께 하느님을 만납니다.
함께 하느님을 만나는 곳을 교회라고도 하고 성당이라고도 하는 거지요.
사실 성전이 있어야 할 더 큰 이유는 함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성체조배 이외에 혼자 하느님을 만나는 곳은 골방으로도 되지만
함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로서의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란 모임 곧 교우들의 모임이고,
성전은 교우들의 모임 장소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뿔뿔이 흩어진 양들을
하느님 목장으로 모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성전은
이 하느님의 목장이요 하느님의 우리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주님 중심으로 우리의 진정한 친교가 이뤄지고,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을 우리가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의 모임에는 계 모임도 있고, 동호회 모임도 있습니다.
계 모임 장소는 식당일 것이고 동호회 모임은
등산의 경우 산이고, 조기 축구의 경우는 운동장일 겁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이 이 계 모임이나 동호회 모임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친교가 이뤄지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하느님을 함께 찬미하는 기쁨이 세속 합창단의 기쁨보다 더 기쁜지
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
내일과 모레 강론을 올릴 수 없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