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제자들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제자의 운명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곧 제자라면 박해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제자라면 그때 그것을 증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면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을 사람들이 박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자가 아닌 사람은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는 사람은 제자가 아닌 셈입니다.
제자가 아닌 사람이나 제자여도 참 제자가 아닌 사람은 박해를 받게 되면
베드로 사도가 배반할 때처럼 나는 그 양반 제자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제자가 아닌 사람이나 참 제자가 아닌 사람은
주님의 제자답게 박해받을 짓이랄까 행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박해받을 짓만 골라 하셨습니다.
우선 약자 편에 늘 서셨습니다.
이것은 권력자의 눈에 거슬리는 겁니다.
권력자들이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약자 편에 서실 뿐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염두念頭, 이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염두란 생각의 첫 자리라는 뜻입니다.
생각의 첫 자리엔 늘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다 비판하셨고 그래서 박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라면 주님처럼 박해받을 짓만 골라 할 것이고,
반대로 제자가 아니라면 박해받을 짓은 절대 하지 않고
오늘 주님 말씀처럼 박해를 증언의 기회로 삼지도 않습니다.
기회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두 부류가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는 사람과 기회를 잡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기회라면 그것을 놓치는 사람이 실패하는 사람이고,
잡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요는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잡고,
기회라고 생각지 않는 사람이 놓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해를 누가 기회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제자들만 기회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 박해를 기회로 생각할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든 그리고 무엇이든 기회로 생각할 것이며,
주님을 증언하고 자기의 사랑을 증거 할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아무튼, 제자의 운명은 박해를 피할 수 없고,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박해를
주님을 증언할 기회로 삼아야 함을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