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제가 하는 <여기 밥상>은 예약제 식탁이고,
제가 영적인 음식인 미사와 육적인 음식인 밥도 해드리는 이중 식탁입니다.
그제도 <여기 밥상>이 있었고,
식사하면서 유쾌한 대화도 나누고 유익한 대화도 나누었는데
한 자매님이 나이 먹는 것과 화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생각에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화를 내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더 화를 내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제 느낌에
그것이 남 얘기를 하신다기보다는 자기도 늙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자기 미래를 걱정하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더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자기 한계와 약함을 잘 받아들이면 화를 덜 내게 되지만
그러지 못할 때 다시 말해서 전과 다른 나랄까 점점 쪼그라드는 나를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오히려 더 화를 내게 됩니다.
특히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사람,
힘도 있고 영향력도 있었던 사람일수록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약해진 자기, 쪼그라든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젊었을 때부터 별로 힘이 없고 영향력이 없으며
오히려 남의 신세만 지던 사람은 늘 그러했기에,
늙어서도 더 초라해질 것이 없고 자기의 약함을 분노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저처럼 인간적이든 영적이든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주던 사람,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늘 가르치기만 하던 사람은 나이 먹어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만 할 때 그런 자신에 대해 화가 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아무튼, 나이 먹으면 사라지는 것투성이입니다.
얼굴에서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손발에서 힘이 사라지고,
몸에서 건강이 사라지고,
머리에서 인지능력이 사라지고,
지혜와 여유마저 사라지면서 사랑도 쪼그라듭니다.
나뿐이 아닙니다.
나의 형제들과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쪼그라들고,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둘씩 내 옆에서 사라집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사라질 때
하느님만은 사라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오히려 나타나시는 하느님이 되고,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