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 이사야서의 첫 구절은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입니다.
그리고 당신 백성 보호하시려고 하느님이 성벽과 보루까지 세우셨다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이 성읍이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견고한 성읍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야 보호받을 수 있기에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 또는 요건은 무엇이냐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성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자격과 요건에 대해서
오늘 독서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의로운 사람이란 하느님을 신뢰하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며,
오늘 복음은 하느님 뜻을 실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먼저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란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께만 신뢰를 두는 사람이란 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만 신뢰를 둔다는 것은
자기를 믿는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 되겠지요.
저의 경우 입으로는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저를 믿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두지 않음은 물론 하느님께도 신뢰를 두지 않고,
저를 믿는 편이었고, 자신감이 넘쳐서 자신만만한 편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 자신감이 점점 쪼그라들어서 자신만만하지는 않고,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 말씀대로 하느님 믿음 안에서 자신감을 가지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자신을 믿기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문제이고,
오늘 주님 말씀대로 입으로는 “주님, 주님”하면서 하느님 뜻을 실천치 않는 겁니다.
이면에서는 옛날의 제가 더 솔직하고 진실했습니다.
옛날의 저는 30대 중반까지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주님”이라는 말이 오글거려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 나는 종이 되어야 하고,
종이라면 주인이신 하느님 말씀대로 다 실천해야 하는데
내가 그런 종이 되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이제는 제가 주님의 종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주님 뜻대로 하는 것보다 제 뜻대로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Excuse me”하면서
우리말로는 “죄송합니다.”하면서.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저는 신뢰는 하면서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니,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불의한 사람이라 해야겠고,
오늘 복음에 비추어 볼 때는
믿음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라 해야겠지요.
의로운 사람이 되다 만,
신앙인이 되다 만 사람이 저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