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신앙 생활에서 중요하지만
그 관계는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주님으로 부른다는 것은
나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주인으로서 그분의 뜻을 찾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합니다.
내 삶은 나의 것이지만
나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즉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공동 소유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내 뜻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도 함께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저 건성으로 하느님을 주님으로 부릅니다.
주님, 주님, 부르지만
그 뜻을 찾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왠지 하느님과의 관계를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쥐고는 있지만
그 관계에 충실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삶이기에
내 뜻대로만 하고 싶습니다.
이 말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족함을 지닌 우리이기에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어서
하느님께 청하게 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피상적인 관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관계가 피상적이다보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한계 때문에
우리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소원할수록
하느님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로 느껴지기보다
엄한 아버지로 보이게 됩니다.
청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하느님께 청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합니다.
이것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슬기로운 행동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로
한 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