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우리는 기가 꺾인 사람들이고,
주님은 그런 우리를 가엾어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신 분이시며 그래서 대림절에 이 복음을 듣습니다.
이 복음과 대림절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묵상이랄까 성찰을 하였습니다.
기가 꺾인 우리의 기를 세워주시기 주님께서 오셨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기가 꺾인 사람인가? 기고만장한 사람인가?
어떤 사람인 것이 내게 좋을까? 기가 꺾인 사람인가? 기고만장한 사람인가?
기가 꺾여 땅바닥에 떨어진 사람과
기가 하늘로 솟은 것이 만장이나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둘 중에 어떤 사람이 좋을까요?
인간적으로만 보면 기가 꺾인 사람은 가여운 사람이고,
기고만장한 사람은 좋게만 볼 수 없더라도 가여운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본다면 기고만장한 사람은 분명 가엾고 불행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대림절이어도 주님께서 오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그만 빼놓고 오실 리 없으시지만
그에게 오셔도 그는 필요 없다고 할 것입니다.
자기 기가 센 사람의 특징이지요.
약자나 병자들이 하느님에게든 인간에게든 남의 기를 받지
기가 센 사람은 받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기를 받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면에서는 기가 센 것보다 기가 꺾인 것이
차라리 낫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기가 죽어 있을 뿐 주님을 갈망하지 않는다면
그는 인간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무튼, 이 지점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성찰해봅니다.
옛날의 저는 두말할 여지 없이 기고만장했습니다.
교만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때와 비교하여 기가 많이 죽은 지금이 오히려 전보다 나은 상태라고,
공자가 나이 60이 되면 이순이어야 한다고 한 대로 이순(耳順)의 상태라고
곧 듣기를 순히 듣는 상태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마침 오늘 독서 이사야서도 ‘하게 되리라.’는 말씀을 반복합니다.
이것을 대림절과 연결하여 이해하면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너희의 눈이 스승을 뵙게 되리라.”
“뒤에서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그러니 우리의 이순이 사람들의 말을 듣는 데도 이순이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 말씀을 듣는 데에 이순이어야 하고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순히 들은 우리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받았느니 주라는’ 오늘 마지막 주님 말씀대로 기가 꺾인 이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고 기를 세워줄 수 있어야겠습니다.